국회의원이 '꼭 필요한 법안'이라고 우기며 자신이 입법발의(대표발의 또는 공동발의)한 법안에 대해 '반대' 또는 '기권'하거나, 표결과정에 불참하는 형식을 통해 국민을 우롱하는 무책임한 행태가 발각된 것.
전 국민의 법생활(재산과 권리의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법안에 대해 그 내용조차 모르거나, 혹은 친분으로 청탁을 받아서 법안을 발의하는 이른바 '품앗이 발의'는 이번에 한 시민사회단체를 통해 공개적으로 노출됐다.
5일 법률소비자연맹이 제18대 국회 1차년도 국회의원이 발의해 원안가결 또는 수정가결된 130개의 법률안에 대해, 발의한 의원이 법안 표결내역을 조사ㆍ분석해 본 결과에 따르면, 발의의원이 법안에 반대한 건수가 3건, 기권한 경우가 12건, 발의한 의원이 표결에 불참한 경우가 117건으로 드러났다.
이번 조사는 의원발의 법안 가운데 '가결'된 것은 총 199건이지만, 국회의장이 국회법에 따라 이의 유무를 물어서 "이의가 없다"고 인정해 가결한 69건의 법률안에 대해서는 참여 여부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130개 법률안을 상대로 진행됐다.
먼저 박기춘 의원 등 13인이 발의한 '하천편입토지보상에 관한 특별조치법안'의 경우를 보면, 발의한 의원이 13명이었는데 3월 3일 281회 임시국회 제12차 전체회의 표결에 13명 중 12명이 불참해 발의한 의원의 표결 불참율이 92.3%에 달했다.
박기춘 의원이 대표발의한 또 다른 법률안인 '한국수자원공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의 경우, 3월 2일 281회 임시국회 11차 본회의 표결과정에서 공동발의 의원 11인 중 9명이 불참해 불참율이 81.8%이었다.
5선의 김충조 의원 등 17인이 발의한 '지방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의 경우에는 발의한 의원 17명 중 3월 3일 281회 임시국회 12차 본회의 표결에 불참한 의원이 11명이나 돼 불참율이 64.7%로 발의의원 불참율 3위를 기록했다.
심지어 대표발의한 의원이 표결과정에 불참한 경우도 있었는데, 18건의 법률안에서 대표발의한 의원이 표결에 불참한 것으로 드러났다.
허범도 의원이 대표발의한 '지역신용보증재단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해 1월 8일 제279회 임시국회 제3차 본회의에서 허범도 의원이 불참했고, 발의의원 11명 중 5명이 불참해 불참율이 45.5%인 '한국도로공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한 장광근 현 한나라당 사무총장역시 4월 1일 282회 임시국회 1차본회에서 해당 법률안의 표결과정에 불참했다.
원안가결된 이용경 의원이 대표발의한 '정보통신공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에서도 2월 12일 제281회 제6차 본회의에서 이용경 의원이 불참을 했으며, 2007년 12월 7일 충청남도 태안군 해안에서 발생한 허베이 스피리트호 유류오염사고로 사회적 관심을 많이 받았던 '허베이 스피리트호 유류오염사고 피해주민의 지원 및 해양환경의 복원 등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한 변웅전 의원도 4월 29일 제282회 제8차 본회의 표결과정에는 불참했다.
특히 대표발의한 의원이 자신의 법안에 반대하는(4월 30일 제282회 제9차 본회에서 통과된 박종희 의원의 ‘은행법 일부개정법률안’) 상식밖(?) 사건도 있었다.
박종희 의원이 대표발의한 '은행법 일부개정법률안'은 발의의원 4인이 불참하고, 9명의 의원이 반대의사를 표시하는 특이법안으로 정당(안)과 위원회 소속(안)의 충돌과정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이밖에 원안가결된 '농어촌특별세법 일부개정법률안'(고승덕의원등 16인)에 대해, 3월 2일 제281회 제11차 본회의 표결과정에서 발의한 의원인 황영철 의원이 반대했다.
이광재 의원이 발의한 '통계법 일부개정 법률안'에 대해서 공동발의한 같은 당 소속 김종률 의원이 반대했다.
발의한 국회의원이 표결시 기권한 경우도 12건이나 됐다.
'지역신용보증재단법 일부개정법률안'(허범도의원등 10인)에 대해서는 공동발의를 한 배영식 의원이 기권했고, 문화재보호기금법안(박근혜의원등 22인)에서는 공동발의를 한 이경재 의원이 4월 30일 제282회 제9차 본회의 표결과정에서 기권을 하는 등 다수 법안에서 공동발의한 의원들이 기권하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이처럼 대표발의 또는 공동발의한 의원들이 불참한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분석된다.
먼저 상임위원회에서 당초 발의한 취지와 다르게 법안이 변질돼 수정가결된 경우가 있고 두 번째로 소위 말하는 법안 발의건수를 높이기 위해 법안의 내용도 모르고 공동발의하고, 표결과정에서도 이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은 경우다.
세 번째는 이른바 '품앗이'로 10명 이상의 공동발의를 정하고 있는 국회법에 따라 그냥 공동발의 도장만을 찍어서 발의한 경우가 있을 것이라는 게 연맹 측의 주장이다.
이번 대표발의 및 공동발의한 법률안에 대한 표결참여율은 법률연맹 의정감시단에서 처음으로 조사해 발표한 것으로, 국회의원들이 제18대 국회 2차년도 이후로는 대표발의하거나 공동발의 법률안 발의에 신중을 기할 것으로 관측된다.
법률소비자연맹 김대인 총재는 "법률안을 만들 때에는 국익과 국민의 이해관계 직역이해 등의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해야 하는데, 일부직역의 이기적 '청부입법'이나, 내용도 모르면서 '품앗이'로 법안을 발의를 하는 것은 전체 국민의 대표로서 무책임한 행태로 규탄받아 마땅하다"고 말했다.
김 총재는 이어 "'법률안의 입안ㆍ심사ㆍ표결과정이 실시간으로 국민들에게 공개되고, 그 책임추궁까지 할 수 있도록 법률안 실명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휴사=국회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