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복지 모회사+개발 자회사 분리 정부 방안 물 건너가
“급하게 처리할 게 아니라 장기 과제로 검토해야” 목소리도
[매일일보 성동규 기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신도시 땅 투기 의혹 사건으로 검토가 시작된 LH 조직개편 방안이 수개월에 걸친 당정 협의에도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섣부른 조직개편으로 주거복지가 약화하는 위험을 감수할 게 아니라 장기 과제로 조직개편을 검토하자는 신중론이 대두한다.
23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정부가 그동안 추진해오던 주거복지 기능을 모회사로 토지·주택 개발 분야를 자회사로 하는 모자 구조의 LH 조직개편 방안이 사실상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국토부는 지난주 국회 공청회에서 모자 구조 개편을 최적안으로 제시했으나 전문가 패널이나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의원들 대부분이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모자 구조에서 모회사가 주거복지 사업을 하려면 자회사로부터 자금을 받아와야 하는데 덩치도 훨씬 작고 인사권도 행사할 수 없는 모회사가 자회사를 제대로 제어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강하게 제기됐다.
LH가 모자 구조로 개편되면 주거복지 기능이 오히려 약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개발 자회사가 경영 여건 등을 이유로 모회사로 올리는 자금을 줄이면 그만큼 정부 재정이 투입되거나 주거복지 규모가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가뜩이나 LH가 부쩍 늘어난 주거복지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자본금을 40조원에서 증액해야 한다. 그런데도 LH 조직개편 문제가 풀리지 않아 당장 급한 자본금 증액 문제를 처리하는 것도 엄두가 나지 않는 형국이다.
정부가 수개월째 LH 조직 분리 방안을 고심한 것은 그만큼 LH 사태가 국민에게 큰 충격과 실망감을 안겨줬기 때문이다. 내부 통제를 강화하고 조직 슬림화를 하는 것만으로 국민 눈높이를 충족하겠느냐는 고민이 있었다.
국민의 공분이 한창 끓어오를 당시 정부는 ‘해체’ 수준의 조직개편을 공언했다. 정치권 역시 LH를 조직 해체 수준으로 환골탈태를 시켜야 한다는 강경론이 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LH 땅 투기 사건에 대한 기억도 차츰 흐려지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국회 국토위 위원들은 공청회에서 LH 조직개편 방안을 좀 더 신중히 검토하자고 입을 모았다. 섣불리 조직개편을 했다가 주거복지 기능이 마비되는 우를 범할 수 없다는 신중론이 대두했다. 일부 의원은 LH 조직의 틀을 유지하면서 견제와 균형을 이룰 방안을 찾자고도 했다.
이런 탓에 LH 조직개편 검토는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갔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LH 조직개편은 한국토지주택공사법 개정 사안인 만큼 국회가 정부 안에 대해 부정적인 이상 이달 중 조직개편 방안 발표는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하기도 하다.
일각에선 LH 조직의 분야별 자산 파악 등 면밀한 분석부터 다시 벌여 중장기 방안으로 신중히 조직개편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아울러 차제에 주거복지 사업을 LH의 재원으로 하지 않고 정부 재정으로 하는 방안을 고민해 봐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렇게 되면 상당한 정부 지출이 불가피해 우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필수적인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