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이재영 기자]중대재해처벌법의 시행령이 제정됐지만 사업자가 지킬 안전의무 조항이 모호해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업체는 책임을 면할 기준이 뭔지 불분명하고, 시민단체는 책임을 회피할 조항이라며 양쪽에서 반발하고 있다. 제도 기준을 구체화할 시행령 추가 개정을 양측에서 요구하는 가운데 행여 목소리에서 밀릴까, 논쟁이 지속될 전망이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의 입법예고가 종료됐지만 명확한 기준이 없는 규제 조항에 산업 현장은 동요하고 있다. 불확실한 규제 리스크를 회피할 근본적인 방법은 결국 사업장을 자동화하거나 규제 기준인 사업장 규모 쪼개기를 하는 등 고용 위축으로 번질 것이란 우려마저 나온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달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매출 상위 600대 비금융기업을 조사한 결과, 올 임단협은 작년보다 어렵다는 응답이 25.4%로 원만하다는 답변(17.7%)을 웃돌았다. 특히 노동부문 최대 현안으로 최저임금 인상(48.5%)과 함께 중대재해 처벌(40%)이 지목됐다. 한경연은 “중대재해처벌법과 시행령은 세계적 유례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모호한 규정이 많다 보니 많은 기업들이 최대 현안으로 꼽은 것이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법 시행령 제정에 의견을 냈던 경제단체들은 조항이 모호해 지켜야 할 의무규정 범주를 가늠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일례로 경미한 질병도 주관적 증상 호소에 의해 직업성 질병으로 간주될 수 있고, 비직업적 요인으로도 발병할 수 있는 질병에 대해 업무로 인한 발병인지 확인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경제계는 이처럼 사고 발생 시 사업주 처벌로 이어질 확률이 높아 경영 리스크가 상시 내재된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참여연대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시민단체와 노조는 시행령이 기업 최고 경영자에게 제대로 책임을 물을 수 없도록 축소됐다며 혹평했다. 직업성 질병의 경우 시행령상 범주가 엄격하며 협소하다는 평가다. 2018~2020년 업무상질병 요양자(사망자 제외) 현황 통계를 보면 시행령상 직업성 질병의 수가 극히 적어 처벌받는 사업장은 전무할 것이란 관측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29일 분량이 많은 가이드북을 내놨지만 각계는 여전히 모호하다는 반응이다. 예를 들어 가이드에는 안전보건에 필요한 자원(인력·시설·장비)과 위험요인의 제거·대체 및 통제에 필요한 자원, 기업의 재정적・기술적 여건을 고려한 자원을 배정해야 한다고 설명하는데 어느정도가 적정 수준인지 구체적이지 않다.
지난달 시행령 의견수렴을 위한 토론회에 참석했던 임우택 경총 본부장은 “불명확하고 모호한 규정으로 법집행기관의 자의적 판단과 수사권 남용이 우려된다”며 “실제 최근 고용부가 중대재해처벌법 항목으로 감독했는데 인력 및 예산 등에 대해 법에서 규정한 기준 이상 수준으로 점검해 기업들은 많은 혼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