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3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은 대구를 방문한 자리에서 “지금 진행 중인 소위 ‘검수완박’은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하는 ‘부패완판’으로서 헌법 정신에 크게 위배되고 국가와 정부에 헌법상 피해를 초래하는 것”이라고 말해 화제가 됐다. 당시 민주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이어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립을 추진했다.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검수완박)을 위해서였다.
‘검수완박은 부패완판’이란 이날 발언은 그의 정계 진출 출사표가 됐다. 다음날 그는 문재인 정권을 겨냥해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저는 이 사회가 어렵게 쌓아올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직격탄을 날리며 전격사퇴한 뒤 대권 행보를 걷기 시작했다.
민주당 밖에서는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하는 형사 사법체계를 검경의 파워게임으로 둔갑시켜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고, 민주당은 이후 대선 국면에서 민생을 강조하며 당내 강경파의 검수완박 관철론과 거리를 둬 왔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 출범을 불과 한 달 앞두고 돌연 민주당 내에서 재차 검수완박 돌풍이 불기 시작했다.
이런 ‘갑툭튀’ 검수완박에 민주당의 이소영 비대위원은 지난 11일 공개석상에서 “추진 초기 많은 지지를 받았던 우리의 검찰개혁은 점점 국민들의 공감을 잃어 갔고 어느새 윤석열 검찰총장 쫓아내기를 검찰개혁과 동일시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 결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한 달 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선출됐다”며 “대안 없는 정책 추진은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고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낳아 결국 개혁의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평가는 민주당 내 소수 의견이다. 윤호중 비대위원장은 다음날 ‘5월 3일 마지막 국무회의 때 문재인 대통령이 (검수완박 법안을) 공포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느냐’는 질문에 “네”라고 즉답했다. 그는 ‘윤석열 당선인이 대통령이 되면 (검수완박에)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도 “네. 당연히 그렇게 하지 않을까 싶다”고 답했다. 윤 당선인이 취임 후 대통령의 거부권을 행사할 여지를 남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통상 대선에 패배한 정당은 최소한 정권교체기엔 반성과 쇄신에 당운을 걸기 마련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오히려 역주행하는 모습이다. 더구나 대선이 끝나자마자 지방선거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다. 지방선거 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와도 “선거 유불리로 판단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한다.
한 정치평론가는 이런 민주당을 향해 “대선에서 패하고도 이러는 정당은 정말 처음 본다”며 “입법독주를 하다가 민심의 심판을 받아 정권을 내놓게 되었음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대체 숨겨야할 죄들을 얼마나 많이 지었길래 자기들의 안전을 위해 국가의 범죄 수사역량을 무너뜨리려는 것인지 탄식이 절로 나온다”고 했다.
4주 후면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다. 5년 전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 서두에서 “지금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다”고 했다. 민주당은 정권 마지막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정당’으로 장식하려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