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부, 경제적으로 불리했던 문정부 미일 외교 노선 수정 의향
철강・반도체・배터리・가전에 친미 외교 긍정적…중국 자극할까 불안도
[매일일보 이재영 기자]새롭게 시작할 윤석열 정부 외교 노선에 따라 국내 수출산업이 미국과 일본 시장 내 실리를 챙길지 주목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미국과 일본 등 수출경제 면에서 다소 불리하게 작용했던 문재인 정부의 외교노선을 수정할 의향을 보여, 그 속에 반도체・가전・철강 등 수출산업의 기회가 부각되고 있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EU와 영국, 일본이 먼저 미국과 무역확장법 232조 관련 진전된 협상 결과를 도출하면서 상대적으로 국내 철강업은 불리해졌다. 이에 업계 안팎에서는 중국과 북한, 일본 등을 둘러싼 외교 현안을 다뤄온 과정에서 미국과의 공조관계가 약해진 탓이 아닌지 해석이 분분하다.
한국은 당초 미국의 철강 관세 인상에 대응해 2018년 협상을 진행한 결과, 263만톤(쿼터) 한도까지 무관세 수출이 가능하도록 쿼터제에 합의했다. 263만톤은 2015~2017년간 연평균 대미 철강 수출물량의 70% 수준이었다. 232조가 적용된 2018년 국내 철강재의 대미국 수출은 24.8%나 폭락했으며 2019년 10.7%, 2020년 12.9%의 감소세가 이어져왔다. 그나마 쿼터제는 일본 등 경쟁국에 비해 국내 철강업계가 선방한 협상 결과였지만 이번에 새로운 협상을 통해 관세를 적용받지 않게 된 일본 등과 전세가 역전됐다.
이런 가운데 확실한 친미 경향을 보이는 당선인의 외교 노선이 추후 철강 협상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앞서 윤 당선인은 외신 인터뷰에서 “한미가 공식적인 관계는 유지했지만 군사 정보 같은 이슈들을 둘러싼 실질적이고 친밀한 논의는 줄었다”고 평가하며 “민주당 정부가 한일관계를 정치에 악용했다. 악화된 한일관계가 한미일 협력을 저해하는 아킬레스건”이라고 언급하는 등 외교 부분에 선명한 선을 드러냈다.
우선적으로 새 정부는 미국이 주도해온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에 합류함으로써 인태 지역 신통상 연대를 강화할 듯 보인다. IPEF는 디지털 통상, 글로벌 공급망, 인프라 등의 분야에서 역내 국가들과 공조해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기 위한 구상이다. IPEF는 다만 인태 지역에서 영향력을 넓히려 하는 중국을 견제하는 성격이 있어 한국이 미국의 우방임을 자처하는 동시에 중국을 자극할 우려도 있다.
업계에서는 중국과 반목하게 되는 결과만 아니라면 한국이 친미 노선을 택해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많다고 본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제조역량을 회복하고 중국과 단절된 상태의 새로운 공급망 재편을 위해 동맹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자 한다. 특히 반도체, 배터리 등의 제조역량 회복이 시급한 것으로 판단하고 자급력 확대와 더불어 해외에 흩어진 소재・부품 공급망의 내재화를 추진하고 있다. 국내 산업이 경쟁우위를 가진 반도체와 배터리는 미국이 자급력을 확대할 경우 불리해질 수 있지만, 미국이 동맹국과 협력해 공급망을 새로 구축하려는 측면에서는 국내 산업에 진출 확대 기회와 협력 가능성도 생긴다.
산업연구원은 국내 배터리, 반도체가 미국 방위산업 공급망에 진출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원에 따르면 반도체의 경우 미국 국방부가 미국의 연구개발(R&D)ㆍ설계를 담당하고 아시아 동맹국들이 제조를 담당하는 분업구조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에 특수 차량용 반도체, 방산제품에 자주 쓰이는 화합물 반도체 등에서 수요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배터리는 미국이 동맹국을 중심으로 한 배터리 규격 표준화로 수요가 증가할 수 있다. 중국산 원자재, 부품 및 최종재에 대한 구매 제약으로 국내 배터리가 반사이익을 얻게 된다는 관측이다.
한편, 수출 시장 중요도 측면에서 미국은 최근 19개월 연속 수출 증가세를 이어가며 코로나19 발병 이후 국내 경제가 선방한 배경이자 전략시장으로서 주목받고 있다. 미국이 기반시설 인프라와 데이터센터 투자를 확대하며 철강・기계・컴퓨터・반도체 품목 등의 수출이 높은 증가세를 보인다. 펜트업 수요 효과를 누린 삼성전자, LG전자 등의 프리미엄 가전에 대한 선호도가 유독 높은 시장도 미국이다. 뿐만 아니라 이차전지, 바이오 등 국내 신성장 산업에 대한 수출도 미국을 중심으로 증가하고 있어 과거와 변함 없는 기회의 땅으로도 인식된다. 다만 중국 역시 반도체・석유화학 등 품목에서 여전히 수요 성장을 견인하고 있는 만큼 자칫 친미일 외교를 통해 중국과 반목하게 될 정서는 경계 대상으로 지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