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나광국 기자] #서울 마포구 전세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30대 직장인 이씨(38·남)는 올 9월 계약 만료를 앞두고 고민이 많다. 이씨는 “2020년 연 2%대 금리로 전세대출을 받았는데 지난해 말부터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리면서 이자 부담이 커졌다”며 “재계약을 하거나 다른 전셋집을 알아보더라도 그동안 가격도 많이 올랐다”고 토로했다. 또 “직장 때문에 월세도 고려하고 있는데, 상황이 비슷한 매수자들이 많아 월세가격도 오르고 있어 주거비 부담이 클 것 같다”고 말했다.
#오는 10월 결혼을 앞둔 직장인 송씨(36·남)는 이달 초 경기도 안양시의 아파트(전용면적 59㎡)를 보증금 1억6000만원, 월세 60만원의 ‘반전세’(보증부 월세)로 계약했다. 송씨는 “매달 갚아야 할 대출 이자도 있고, 직장이 서울에 있어서 가능한 전세를 얻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 했다”면서 “대출이자 부담이 큰 상황에서 월세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이 본격적으로 조정에 들어선 가운데 기준금리 인상으로 전세대출 이자 부담이 커졌고, 월세화도 가속화되면서 서민 주거비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에 정부가 발표한 8·16공급대책에 포함된 ‘주거사다리 복원 방안’이 실효성을 거둘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2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주택종합 월세가격은 전달보다 0.16% 올라 석 달 연속 같은 상승률을 나타냈다. 지난달 전국 주택종합 매매·전세가격이 각각 0.08% 내려 올 들어 최대 낙폭을 기록하는 와중에도 상승세를 이어간 것이다. 지난달 전국 아파트 월셋값의 경우 0.22% 올라 전달(0.21%)보다 상승폭을 확대했다. 서울의 경우 0.07%에서 0.10%로 오름폭을 키웠다. 특히 도봉·동대문(0.26%), 노원·광진구(0.25%) 등 강북지역에서 큰 폭으로 올랐다.
실제로 월세 가격의 경우 임대차법 시행 후 30% 이상 상승했다. 부동산R114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통계를 분석한 자료를 살펴보면, 서울 전용면적 84㎡ 아파트의 올해 상반기 평균 월세는 263만원이었다. 2년 전인 2020년 상반기 평균 월세 201만원보다 30.7%(62만원) 올랐다.
주요 단지들에서도 월셋값 상승세가 나타났다. 송파구 잠실동에 위치한 ‘리센츠’ 전용면적 84㎡는 지난해 6월 보증금 1억원, 월세 270만워에 계약됐는데, 올해 6월에 같은 면적이 보증금 1억원, 월세 380만원에 신규 계약을 맺으면서 1월 새 월세가 110만원 상승했다. 성동구 옥수동 ‘레미안옥수리버젠’ 전용면적 59㎡도 동일한 보증금에 월셋값이 1년 사이 60만원 올랐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 상반기 서울 아파트 월세 거래량은 4만2256건으로 집계돼 지난해 상반기(3만4956건) 대비 21% 늘었다. 2011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후 상반기 기준 가장 많은 수치다. 이처럼 월세 거래가 늘고 가격도 오르면서 주거비 부담도 더 커지고 있다.
서울 광진구 구의동에 위치한 A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6월 이후 매매와 전세거래와 관련된 문의는 거의 없고, 실제로 월세 위주로 계약이 이뤄지고 있다”며 “특히 1~2인가구의 청년들이 전세를 구하려다 대출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월세를 찾는 경우가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이어 “한 청년의 경우 올 여름에 전세 계약이 끝났는데 대출 이자 부담이 커서 월세를 알아보던 중 주거비 부담이 심하다며 출퇴근이 어려워도 경기도에 있는 본가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연이어 인상된 금리가 앞으로도 추가로 예고되면서 변동성이 높은 전세대출 이자부담보다 고정된 금액을 지불하는 월세를 수요자들도 선호하고 있다”며 “물론 매달 고정적으로 지출이 발생하면서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은 커지겠지만 매도자와 매수자 모두 월세가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어, 이런 상황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월세화 현상이 짙어지면서 서민 부담이 커지자 정부는 청년원가, 역세권 첫집 등을 통해 무주택 서민의 내집 마련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청년원가·역세권 첫집을 통합 브랜드화하고, 입지와 수요 등에 따라 다양한 유형으로 공급할 방침이다. 다만 재원 마련이 어려워 공급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어 향후 세부적인 계획에 관심이 집중된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연간 50만가구 규모를 언제 어떻게 공급하겠다는 계획은 있지만 수요 예측에 대한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면서 “최근 금리 인상에 따른 월세가격 상승 등으로 서민 주거비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무주택자들이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좀더 구체적인 내용이 필요해 보인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