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은행 가계대출 2.7조 감소...2개월 연속 내리막
부동산 경기 침체 겹치며 주담대도 9년 만에 감소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빚잔치'가 끝나가고 있다. 지난달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 9년여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다. 은행권 가계대출이 2조7000억원 줄어 2월 기준 역대 최대 감소폭을 기록했다. 이로써 은행권 가계대출은 월별 기준 두 달 연속 역대최대폭으로 줄었다. 고금리 여파와 부동산 침체 지속에 대출 수요가 급갑한 것으로 보인다. 은행들은 걱정이다. 대출수요가 쪼그라들면서 앉아서 이자를 쓸어담던 호시절이 끝나가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9일 발표한 '2023년 2월 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권 가계대출(정책모기지론 포함)은 2004년 1월 통계 속보치 작성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2월 가계대출은 2조7000억원이 줄었는데 특히 은행권 주담대는 한 달 새 3000억원이 줄었다. 은행권 주담대 규모가 감소한 것은 2014년 1월 이후 처음이다. 이 기간 정책모기지(1조원)와 일반 개별주담대(7000억원), 집단대출(5000억원)은 증가했지만, 전세대출이 2조5000억원 급감하면서 전체 주담대 감소세를 이끌었다.
윤옥자 한은 금융시장국 시장총괄팀 차장은 "고금리 부담으로 신규 전세대출 수요가 줄었고 기존 대출을 상환하는 부분도 있었을 것"이라며 "전세 자체의 거래량이 월세 전환으로 인해 줄었고 전세 가격이 2년 전에 비해 낮아진 역전세난 상태인 부분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신용대출을 포함한 은행권 기타대출은 높은 대출금리,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3단계 규제 등으로 2조4000억원 감소했다. 다만 상여금 유입 등 계절적 요인이 사라지면서 감소폭은 전월(4조6000억원) 대비 축소됐다.
한편 이날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2월 금융권 가계대출 동향'에 따르면 은행을 비롯해 2금융권 등 전 금융권 가계대출 규모는 전월 대비 5조4000억원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한은 통계에서 집계되지 않은 2금융권 가계대출의 경우 보험(3000억원)·저축은행(200억원)은 소폭 증가한 반면, 상호금융(-2조7000억원)·여전사(-4000억원)를 위주로 줄면서 2조7000억원 감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당국 관계자는 "은행 등 전 금융권에 걸쳐 주택담보대출 감소세가 지속되고 있다"며 "가계부채가 안정적 수준으로 유지되도록 모니터링하고 고금리에 따른 가계부채 위험요인이 없는지 지속 점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가계대출 감소는 대출자들이 고금리 이자 부담 해소를 위해 대출 상환에 나서는 데다, 부동산 시장 침체 영향으로 대출 확대가 어려워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은의 ‘1월 금융기관 가중평균금리’를 보면 가계대출 금리는 1월에 연 5.47%를 기록했다. 주담대 금리는 연 4.58%다. 잔액기준으로 국내 가계대출의 변동금리 비중은 전체의 68.2%를 기록하고 있어, 대출자 10명 중 6명 이상이 연 5%대의 고금리로 이자 상환을 하는 상황이다.
특히 은행권은 2021년 말에만 해도 가계대출 평균 금리가 연 3.66%를 기록했다. 1년 만에 금리가 5%대로 뛰어오르면서 대출자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
부동산 경기 악화도 대출이 늘어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분양물량은 올해 1월 1만호에 그쳤다. 이는 지난해 12월 말의 4만3000호보다 더 줄어든 규모다. 아파트 매매거래량도 지난해 8월 이후 월별로 2만호를 넘지 못하고 있다. 2021년 하반기에 월별 아파트 매매거래량이 보통 4만~5만호를 기록한 것과 비교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최근 당국이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완화하고 규제지역의 대출을 허용하기 시작했지만, 아직 DSR규제를 완화하지 않으면서 받을 수 있는 대출의 한도가 증가하지 않기 때문에 대출자 입장에서는 추가 대출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대출 급감의 요인이 되고 있다.
가계대출이 계속 감소하면서 올해 은행권의 이자이익 증가율은 전년보다 크게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이자이익에만 치중한 수익 구조를 비이자이익 확대와 해외 진출 등으로 다변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지난해 4대 금융지주의 이자이익은 총 39조6739억원으로 전체 순이익 중 82%를 차지했다. 나머지는 비이자이익이 차지했다.
한편 금융당국이 은행들의 ‘이자 장사’를 정조준하고 사실상 체제 개혁에 나선 가운데 대출 수요마저 쪼그라들면서 은핸들의 비(非)이자 이익 비중 확대가 핵심 과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고금리 기조로 가계대출 감소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정부 압박까지 더해져 은행권의 이자이익이 지난해처럼 크게 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