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방치된 정책...이제라도 소비자 권리 찾아야”
[매일일보 배나은 기자] 시중 은행이 고객들의 대출 금리인하 요구를 수용한 전체 실적이 올 들어 26.6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일각에서는 이 같은 실적 증가가 그동안 금리인하 요구권에 대해 금융기관과 감독기관이 침묵으로 일관했기 때문일 뿐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병두 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아 3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8월까지 국내 은행들의 대출 금리인하 요구권 수용 실적은 5만3012건에 규모상으로 21조2900억원을 기록했다.금리인하 요구권은 소득이 늘거나 신용등급이 오른 기업·개인이 은행에 대출 금리를 낮춰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평균 금리인하 수준은 연 1%포인트(p) 정도로, 고객들이 경감받은 이자 부담은 연간 2129억원 수준이다.이 제도는 2002년 8월에 도입됐지만 홍보가 덜 된 탓에 10년간 사실상 유명무실했다.하지만 금감원이 지난해 7월 금리인하의 요구 대상 및 인정 범위를 확대하라는 지침을 은행에 내려 보냄에 따라 2011년 112건 160억원에 불과했던 실적이 지난해 5945건 8000억원으로 늘어났고, 올해 들어서는 1년도 안돼 금액상으로 26.6배 증가했다.금리인하 요구 신청 건수 대비 채택 실적은 은행별 차이가 컸다.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금리인하 요구 신청을 전부 받아들여 채택률 100%를 기록했다. 산업은행은 373건 7423억원, 수출입은행은 12건 544억원이다.국민은행도 642건(2097억원) 중 625건(2029억원)이 받아들여져 97.4%의 높은 채택률을 보였다.
기업은행은 1만6270건(7조3623억원) 중 1만6177건(7조3328억원), 신한은행은 1만1608건(1조9973억원) 중 1만1044건(1조8800억원)이 수용돼 각각 99.4%, 95.1%를 기록했다.외환은행은 2424건(2조1201억원) 중 2413건(2조1046억원), 하나은행은 1만4606건(7조4902억원) 중 1만3695건(7조2375억원)으로 각각 99.5%, 93.8%에 달했다.반면 농협은행과 우리은행은 채택률이 60%에 그쳤다.농협은행은 8710건(1조1082억원) 중 5998건(6795억원), 우리은행은 1245건(7278억원) 중 790건(4529억원)이 채택돼 각각 68.9%, 63.5%다.금리인하 요구권이 지난 10년간 감독당국과 시중은행들의 외면 속에 사실상 방치돼 소비자들이 권리를 박탈당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실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상직 민주당 의원이 금감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8∼2012년 국내 시중은행들이 고객들에게 금리인하 요구권을 안내한 건수는 46건에 불과했다.은행별로 살펴보면 그나마 IBK 기업은행이 금리인하 요구권을 홍보한 건수가 8건으로 가장 많았고 KB국민·SC은행(6건), 우리·외환·전북은행(4건), 부산은행(3건), 신한·농협·수협·광주은행(2건), 산업·경남·제주은행(1건) 순이었다.특히 수출입·하나·씨티·대구은행 등은 단 한 번도 홍보를 하지 않았고 홍보를 한 은행도 홈페이지나 상품설명서를 통한 안내에 그쳐 홍보비는 사실상 ‘0원’이나 다름없는 셈이다.반면 시중은행들이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사용한 광고비는 무려 1조7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이 의원은 “금리인하 요구권을 은행들만 아는 비밀처럼 쉬쉬한 것은 국민들이 피 땀 흘려 모은 돈을 갈취한 것과 다를 바 없다”며 “이제라도 적극적으로 홍보해 금융소비자들이 정당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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