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악화에 내핍생활 늘어…‘보상심리’ 작용한 호화 식사 유행
매일일보 = 김민주 기자 | 1인가구 한 달 식비에 준하는 금액을 한 끼에 지출하는 건 어떤 기분일까.
최근 젊은이들의 SNS에선 ‘오마카세’ 후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오마카세는 ‘맡긴다’는 뜻의 일본어로, 주방장이 그날의 식재료를 엄선해 자신만의 창의력으로 음식을 내놓는 외식 서비스의 한 종류다. 국내에선 한우, 커피, 디저트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고급 코스요리를 맛보는 ‘호화 식사’로 개념이 확대됐다.
친구, 직장동료 등 안 다녀온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렵다. 막연한 호기심과 함께 유행에 뒤처지는 듯한 조바심이 들었다. 가계부를 쓰며 손을 떠는 평범한 소득 수준의 주변인들이 너나 가릴 것 없이 오마카세를 다녀온 배경에도 같은 심리가 작용했을 것이라 추측된다.
기자가 직접 도전한 오마카세 체험은 예약부터 난관이 발생했다. 인기 많은 식당들은 대부분 2주나 한 달에 한 번 선착순 예약을 받고 있다. 예약창이 열린지 10초도 안돼 매진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치열한 예약 전쟁을 뚫고, 5만원의 예약금을 입금하고서야 첫 번째 단계를 끝낼 수 있었다.
저녁에 방문한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일식 오마카세 전문점. 이 식당의 1인당 비용은 13만원이다. 지역과 셰프의 명성, 식재료 수준 등에 따라 적게는 10만원대부터 많게는 30~50만원대까지 가격대가 다양하다. 13만원 정도면 저렴한 편에 속한단 평이다.
저녁 방문 시 테이블 당 주류 1병 주문이 필수인 곳도 적지 않다. 기자가 방문한 식당도 저녁 방문객들은 주류 주문이 필수다. 종류는 일본 전통주와 와인으로 구성, 가격은 8~18만원대로 형성돼 있다. 가장 저렴한 8만원짜리 사케 한 병을 시켜, 이날 식사 총 지출액은 21만원에 달했다.
서비스는 훌륭했다. 셰프 1명이 두 팀, 최대 4명을 담당하는 시스템으로, 온전히 집중 받고 있단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지정 셰프는 재료를 공수한 과정과 가장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고객들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했다. 음식의 온도, 플레이팅, 밑반찬, 매장 음악 등 각 손님 맞춤별 니즈를 세심하게 살피고 수용했다.
양도 풍족했다. 계란찜, 숙성회 2종, 초밥 10종, 후토마키(일본식 김밥), 구이류 1종, 튀김류 2종, 조림류, 특제솥밥, 국물 요리, 수제 디저트 2종 등 총 10개 코스, 요리 22개가 나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초밥을 한 개 더 먹을 수 있는 ‘앵콜스시’는 기자를 포함해 대부분의 손님들이 배가 불러 포기했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음식의 품질, 고차원 서비스에 식사가 끝날 무렵 상당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다. 총 소요시간은 1시간 30분을 넘겼지만 지루함은 느낄 수 없었다. 자주 오긴 부담스럽더라도, 기념일이나 자신에게 위로가 필요한 날 이용하기에 충분히 가치 있단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한 끼 20만원이 과하단 생각은 떨칠 수 없었다. 가장 놀라웠던 점은 이날 방문객 중 대부분이 2030세대였단 점이다. 담당 서버는 해당 식당의 주 방문객이 30대 초중반이라고 설명했다.
매일 각종 TV와 신문에 등장하는 ‘고물가’, ‘청년 구직난’, ‘소득 감소세’ 등의 뉴스와는 상반된 모습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경기 악화 속 오마카세, 파인레스토랑 등 호화 식사가 유행하는 현상을 ‘가치소비’라고 진단한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최근 경제난이 지속되며 절약보다 더 심한 ‘내핍생활(耐乏生活)’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이런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보상 받고 싶은 심리에, 평소 생활 필수품은 가성비를 추구하고, 자기 만족을 위한 소비에선 프리미엄을 선호하는 일종의 ‘보상소비’라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