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패권 경쟁 본격화로 신냉전 도래…“적극적 수출국 다변화 필요”
매일일보 = 김원빈 기자 | 복합위기와 지정학적 긴장 속에서 한국의 수출은 부진한 궤도에 직면했다.
1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국 수출은 경제 불황 장기화 영향으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지난 9일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KERI 경제동향과 전망’ 2분기 보고서에서는 올해 경제성장률이 1.3%로 전망됐다. 이는 당초 전망치인 1.5%보다 0.2%포인트(p) 하향 조정된 것이다. 또 이같은 수치는 외환위기(1998년), 금융위기(2009년), 코로나19 확산(2020년) 등을 제외한 기간 중 가장 낮은 수치다.
한경연은 경제성장률 하향 조정의 주요 원인으로 수출부진을 꼽았다. ‘중국 리오포닝’에도 수출 상황이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자 수치를 조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경연은 하반기 이후에도 중국 리오프닝 효과가 제한적일 경우 실제 경제 성장률은 더 낮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의 리오프닝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며 수출이 0.1%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 한경연은 금리급등, 주요국 경기 불황, 소비여력 감소 등도 원인으로 꼽았다.
이 가운데 수출 상황 개선을 막는 주요 요인으로는 미·중 패권경쟁 등으로 인한 대외관계 변수가 꼽힌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신냉전이 도래하며 세계적은 블록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에서 주요국 정상은 공동선언문을 통해 중국 견제를 본격화했다. 이들은 “우리의 정책 접근은 중국을 해하거나 중국의 경제적 진보와 발전을 방해하려는 것이 아니다”라며 “중국과 ‘디커플링’ 하거나 내부 지향적이 되려는 게 아니며, ‘디리스킹’과 다변화가 필요한 경제적 탄력성(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중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 구축을 견제하겠다는 의미다.
이중 미국과 일본은 선두에서 중국에 대한 다양한 압박을 가하며 견제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일본은 오는 7월 23일부터 중국의 최첨단 반도체 생산을 제한하기 위해 미국, 네덜란드와 공동으로 반도체 제조장비 수출 규제를 시행할 예정이다.
첨단반도체 제조장비 등 23개 품목에 대해 우호적인 42개국·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 수출할 경우 경제산업성의 개별 허가를 얻도록 했다.
수세에 있던 중국도 반격에 나서고 있다. 중국은 지난달 21일 미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제조기업인 마이크론에 대한 제재를 가했다. 마이크론의 제품이 중국에 심각한 보안 위험을 초래하는 걸로 판단된다는 게 그 이유다.
국제 관계 변동에 따라 한국의 수출 주요국 현황도 요동치고 있다. 한국 수출 1위국은 20년만에 중국에서 미국으로 변경됐다.
4월 정부와 한국무역협회 무역통계 자료를 보면, 올해 상반기 한국 총수출에서 대중 수출 비중(금액 기준)은 19.5%를 기록했다. 대중 수출 비중이 20% 이하를 기록한 것은 2005년 이후 처음이다. 작년 중국 전체 수입시장에서 한국산 제품의 점유율도 2001년 이후 가장 낮은 7.5%를 기록했다.
반면, 대미 수출은 17.7%를 기록해 2003년 수준으로 상승했다. 대미 수출은 2011년 10.1%를 기록하며 최저 수준을 기록한 바 있다. 대외 관계 변동에 따라 한국의 수출 주요국이 격변을 겪고 있는 모양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이 확산하고 있어 수출 전략을 마련할 때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상황”이라면서 “특정 국가에 과도하게 의존하기보다는 동남아·인도·남미 등 잠재력이 높은 시장을 개척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