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긴축재정'과 배치···공수표 공약 우려
매일일보 = 이태훈 기자 | 선거 국면이 일단락되면서 시선은 여야가 총선 과정에서 내놓은 공약 이행 여부에 쏠리고 있다. 여당은 부가세 인하 등을 골자로 한 감세 정책을, 야당은 모든 국민에 25만원을 지급하는 민생회복지원금 지급 등을 약속했는데, 구체적 재원 마련책을 제시하지 않아 '공수표'에 그칠 거란 우려도 나온다.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의 총선 공약은 '감세'로 설명 가능하다. 부가세 감면안이 대표적이다. 장바구니 부담을 덜기 위해 일부 가공식품에 부가가치세를 10%에서 5%로 인하하고, 부가세 간이과세 기준을 기존 연매출 8000만원에서 2억원으로 높여 자영업자의 세 부담을 낮춘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여당의 공약에 정부는 "검토하겠다"고 화답한 상황이다. 이를 위해선 부가가치세법 등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
또 여당은 1400만 개인투자자를 겨냥해 2025년부터 시행할 예정인 금융투자소득세를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금투세는 주식·채권·펀드·파생상품 등에 투자해 발생한 5000만원 이상 양도소득에 20~25%의 세율로 부과하는 세금이다.
더불어민주당은 현금성 정책이 눈에 띈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달 24일 민생회복지원금으로 1인당 25만원, 가구 평균 100만원의 지역화폐 지급을 제안했다. 공식 공약집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가계 소득을 늘려 경제 위기를 극복하자는 취지다. 민주당은 이를 위해 약 13조원의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했다.
저출생 공약으로는 만 18세 미만까지 아동수당을 월 20만 원씩 지급하겠다고 했다. 기존 만 8세 미만까지였던 아동수당 지급 연령을 대폭 늘린 것이다.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정부가 매월 10만 원씩 넣어주는 '우리아이 자립펀드'는 물론, 신혼부부에게는 가구당 10년 만기 1억원의 대출도 열어주겠다고 공언했다.
이는 민주당이 제안한 '기본사회 5대 공약'에도 일정 부분 녹아있다. 기본사회 5대 공약은 이 대표의 전매특허 '기본소득'의 연장선으로 △출생소득 △기본주택 △무상교육 △간병지원 △경로당 점심으로 구성됐다.
여야가 공통으로 추진하겠다고 한 공약도 있다. 주요 도로·철도를 지하화하는 개발 공약, 교통비 절감을 위한 청년 패스 도입,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간병비 건강보험 적용 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여야 모두 공약 이행에 필요한 재원 마련 방법을 밝히지 않은 것은 추진 가능성을 의심케 한다. 이들이 제시한 공약은 개별 사안마다 적게는 수백억원, 많게는 수십조원이 필요한 사업들이다. 가뜩이나 현 정부가 '긴축재정'을 강조하고 있고 56조원의 세수 결손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막대한 추가 예산을 확보할 방법은 많지 않다. 정부가 극도로 꺼리는 추경 외엔 사실상 방도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원을 마련하지 못하면 '공수표 공약'이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총선 이후 상당한 재정 투입을 요구에 부딪힐 재정당국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공약 이행 요구는 총선 이후 각 부처의 당정협의 등을 통해 봇물처럼 밀려들 가능성이 높다. 각 부처의 예산소요가 커지면 한정된 재원을 분배해야 하는 예산편성 과정은 그만큼 난항을 겪게 된다.
이 같은 고민이 투영된 듯,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최근 기재부 확대간부회의에서 "기재부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책과제·공약 등을 한정된 재정으로 최대한 담아내는 게 숙제라는 뜻으로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