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의대증원 규모 협상 의사 있어”… 백지화는 불가
야당 손 들어준 국민… ‘여·야 포함 협의체 구성’ 명분 강화
매일일보 = 이용 기자 | 이번 총선 결과와 관계없이, 의대증원을 비롯한 의료개혁 정책은 그대로 추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11일 정치권 및 의료계에 따르면, 이번 여당의 참패는 국민들이 의사의 편을 들어준 것이 아니라, 윤석열 정부의 무리한 증원이 부작용을 낳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따라서 현재 진행 중인 의대증원 정책은, 규모에 대한 협상은 있겠지만 철회는 없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실제 참패를 맛 본 여당 국민의힘에서도 의대증원 규모를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후보들은 속속 당선됐다. 관련 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힌 후보 중 국민의힘 권영세, 나경원, 안철수, 윤상현 후보는 과반이 넘는 득표율을 보이며 당선됐다.
서울 용산구 권영세 후보는 51.77%, 6만6583표를 얻어 당선됐다. 서울동작을에 출마한 나경원 후보는 54.01%로 당선됐으며, 안철수 성남분당갑 후보도 53.27%로 당선을 확정했다. 또 인천 동구미추홀구을 윤상현 후보도 50.44%의 지지를 얻었다.
의사 출신 안철수 후보는 총선 이전부터 증원 규모를 조정하는 융통성을 보이자고 주장한 바 있다. 안 후보는 “의료 파탄으로 국민들의 피해가 커갈수록 국민은 정부 여당을 원망하게 될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정부·여당은 민심에 순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권영세 후보도 “궁극적으로는 2000명으로 가더라도, 이를 조금 미룰 수도 있고, 점진적으로 할 수도 있다. 유연성이 좀 필요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나경원 공동선대위원장도 한 언론사에 출연해 “2000명 정도는 증원해야 되는 것이 맞지만, 오랫동안 갈등이 지속돼 (의정 양측이) 충분히 대화를 해야 되는 것 아닌가”라고 전했다.
의료계가 주목해야 할 상황은, 의대증원을 철회하자고 주장하는 후보는 여야 통틀어 한명도 없단 점이다. 본래 의대증원은 문재인 정권이 추진하던 사안으로, 현재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증원 자체엔 동의하기 때문이다. 이에 이번 야당의 총선 압승이 오히려 의료계에 더 부정적인 상황이 빚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재명 인천 계양구을 후보는 총선 전 “과도한 2000명 증원이라는 목표를 제시하면서 의료계를 자극했다”고 현정부를 비판했다. 그리고 “의료계 안에서는 500명 정도 의사 증원에 합의할 의사가 있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해당 수치는 일부 의사 단체가 제시했던 증원 적정선이다. 이를 근거로 야당이 의사들과 협상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증원 규모는 협상 대상이 될 수 있어도, 전면 백지화는 수용하기 어렵단 입장을 내비친 것이다.
정부 여당과 의료계 간의 강대강 대치에서 환자와 보건의료종사자가 소외된 가운데, 민주당은 정치계와 정부, 의료계, 환자 등이 모두 참여해 대화할 수 있는 협의체를 구성하자는 의견을 낸 바 있다.
당시 여당은 해당 안을 제시한 야당에게 선거 전략이라고 비판했지만, 절대 다수 국민이 민주당의 손을 들어준 만큼 협의체엔 야당도 포함돼야 하는 상황이다. 의료계 입장에선 여당의 패배로 오히려 협상 대상이 야권까지 확대된 셈이다.
문제는 의료계의 내부 싸움이다. 협의체를 구성하려면 의료계가 뜻을 모아야 하는데, 의료계를 대표하는 단체인 의협 마저도 의견을 모으지 못한 형편이다. 여야는 증원 규모에만 차이가 있을 뿐 의대증원을 달성하겠단 목적은 같다.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은 11일 "정부는 유일한 의사 법정단체로서 의협의 대표성을 인정하고 공식적인 대화 파트너로 존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임 당선인의 임기는 5월 1일부터 시작으로, 협회 투쟁 방향성에 대한 권한은 아직 의협 비대위가 갖고 있다.
김성근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홍보위원장은 전날 오후 브리핑을 통해 "이번 주로 예정됐던 합동 기자회견은 시기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고 밝혔다. 합동 브리핑이 연기된 사유는 표면적으론 타 의사 단체의 참여 거부지만, 의협 내부에서 의견을 통일하지 못해 화합을 주도하기 힘들어졌다는 시각도 있다.
의협은 지난 2월 의정 갈등 촉발 이후 비대위 체제로 운영되면서, 김택우 비대위원장이 비대위를 담당 중이다. 의협 비대위는 정부에 ‘의대증원 1년 유예안’을 제시해 비교적 온건적 입장을 내비쳤다. 반면 최근 치러진 선거에서 신임 회장으로 당선된 임현택 당선인은 ‘의사 정원 축소’까지 주장하는 대표적 강경파다.
비대위는 임 당선인을 향해 "인수위와 당선인이 비대위가 마치 정부와 물밑 협상을 하는 것처럼 호도하고, 험한 표현까지 하면서 언론을 이용해 공격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여야 입장에선 증원 규모를 감소하는 것으로 의정 갈등을 마무리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에 앞서 의료계는 통일된 협의체를 구성해야 정치권과 협상에 나설 수 있다. 그러나 의협 내부에서조차 의견 통일이 이뤄지지 않은 만큼, 당분간 의정 갈등은 해소되지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