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민경식 기자 | 엔데믹 2년차에도 고물가·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투자·소비심리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고 있다. 이같은 불확실성을 넘기 위해 일부 유통업체 사이에선 제품 가격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용량을 축소하거나 품질을 떨어뜨리는 슈링크플레이션·스킴플레이션 방식을 꾀한 꼼수 가격 인상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식음료업체들이 제품의 가격은 동결하면서 중량을 축소해 사실상 가격 인상 효과를 누리는 슈링크플레이션 전략을 전개하고 있다. 소비자 측면에서 같은 가격으로 더 적은 양의 제품을 구매하게 되는 셈이니 사실상 효용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한국소비자원이 가격정보종합포털사이트 참가격과 슈링크플레이션 신고센터 등에 접수된 가공식품 272개의 최근 1년 사이 용량 등을 파악한 결과, 9개 품목, 37개 상품에서 용량이 줄은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소비자원이 참가격에서 관리하는 가공식품 209개를 톺아본 결과, 최근 1년(2022년 12월∼2023년 11월) 사이 3개 품목 19개 상품의 용량이 축소된 것으로 드러났다. △바프의 허니버터아몬드 등 견과류 16개 제품 △CJ제일제당의 백설 그릴 비엔나(2개 묶음 상품) △서울우유협동조합의 체다치즈 20매 상품과 15매 상품 등의 용량은 최소 7.7%에서 최대 12.5%까지 줄었다.
정부가 출범시킨 슈링크플레이션 신고센터를 통해 지난해 12월 8일까지 접수된 53개 상품 가운데 9개의 용량이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몬덜리즈 인터내셔널의 호올스 7개 상품과 가정배달용 제품인 연세대학교 전용목장우유 2개 상품의 용량이 10%~17.9% 줄었다.
이외에도, 슈링크플레이션 의심 사례로 지적됐던 10개 상품 가운데 9개 상품이 용량을 줄였다. 양반 참기름김·들기름김(동원에프앤비), 고향만두(해태), 카스 캔맥주 8캔 묶음(오비맥주), 숯불향 바비큐바(CJ제일제당) 등이다.
슈링크플레이션에 이어 스킴플레이션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스킴플레이션은 용량은 유지한 채 재료나 서비스 투자 비용을 줄여 가격 인상 효과를 누리는 것을 뜻한다. 소비자 불만을 교묘하게 회피하는 복안 중 하나인 것이다.
BBQ는 지난해 10월부터 비싼 ‘100% 올리브유’ 비율을 기존 100%에서 절반으로 줄이고 해바라기유를 섞은 ‘블렌딩 오일’을 적용했다. 롯데칠성음료는 오렌지주스 원액 가격 상승으로 지난해 델몬트 오렌지 주스의 과즙 함량을 낮췄다.
앞으로 식자재, 인건비, 물류비 각종 가격이 오르면서 당장 제품값을 인상할 수 없지만, 품질을 낮춰 비용 절감에 나서는 기업들이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원료를 대량 구매해야 식품업계 특성상 원가가 조금 오르더라도 부담은 커지기 마련”이라며 “가능한 품질을 낮추지 않기 위해 고집하던 업체들도 최근 냉장식품을 냉동으로, 국산을 외국산으로 바꾸는 움직임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제22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야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자 식품업계는 물론 유통업계 전반에서 제품 가격 인상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의 물가안정 기조에 동참한다는 표면적 이유로 손실을 감내해온 유통업계가 가격 인상을 놓고 저울질하는 분위기가 감지되면서, 정부의 유통시장 직개입을 통한 가격통제 정책은 점차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고물가는 물론 최근 원/달러 환율이 장중 1400원을 돌파하는 등 불안정한 수입 원자재 가격도 전반적인 식품 물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라며 “또한, 총선 전에는 기업들이 정부의 물가안정 기조에 눈치를 봤지만, 가격 인상 요인이 커진 만큼, 인상 시기를 검토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