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이태훈 기자 | 22대 총선에서 기록적인 승리를 거둔 더불어민주당이 제2당이 관례로 맡아왔던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직을 노리고 있다. 이에 국민의힘이 "의회 독재"라고 반발하면서 향후 원구성 협상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주인이 정해지지 않은 법사위원장 자리에 벌써부터 하마평이 무성하다. 민주당은 전현희·이언주 당선인과 박주민 의원, 국민의힘은 정점식 의원 등이 거론된다.
24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야의 법사위원장 쟁탈전은 22대 국회 개원일이 다가올수록 격화되고 있다. 민주당은 총선 승리 후 당내 강경파들을 중심으로 '법사위원장 수호론'이 빠르게 펴졌다. 이들은 총선 민의에 따라 국회 운영도 다수당 중심으로 재편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회 제2당이 관례로 가져갔던 법사위원장 자리를 민주당이 노리는 것은 입법 독재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반발한다. 유상범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의 법사위원장 고집에 대해 "다수당이 마음대로 한다면 국회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 안건조정위원회나 상임위 직회부 같은 제도도 필요 없어진다"며 "(민주당의 법사위원장 고집은) 입법 독재하자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여당이 주장하는 '제2당 법사위원장론'의 뿌리는 17대 국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무현 정부 당시 여당이자 원내 제1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제2당이었던 한나라당에 법사위원장을 넘겼다. 이후 여야 상관없이 제2당이 법사위원장을 계속 맡아왔다. 1당이 법사위원장을 한 경우는 문재인 정부 21대 전반기 민주당이 유일했다.
법사위원장은 '본회의 수문장'이자 '국회 문고리 권력'으로 통한다. 법사위는 각 상임위에서 검토한 모든 법안을 본회의에 올리기 전 최종 심사하는데, 법사위원장은 소속 정당의 입장에서 입법 과정의 속도를 낼 수도, 반대로 지연시킬 수도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21대 후반기 국회에서 특검법 등 여야 쟁점 법안이 법사위에서 막힐 경우 신속처리안건 지정(패스트트랙)을 통해 우회하는 방법으로 본회의에 올렸다. 하지만 이 경우 본회의 상정까지 최장 330일이 걸려 '시간 허비' 지적이 있었는데, 법사위원장을 민주당이 장악하면 이런 고민을 해소할 수 있다. 이를 알고 있는 국민의힘도 필사 저지에 나선 것이다.
여야 모두 법사위원장을 포기할 수 없다는 의사를 굽히지 않으면서 하마평에도 여러 인사들이 오르내리고 있다. 통상 법사위원장은 법조인 출신 3선 이상 중진이 맡아왔다. 각종 상임위에서 올라온 법안들을 심사해 본회의로 올려보내는 역할이다 보니 어느 정도 법적 전문성이 있어야 해서다.
이번 총선 민주당 당선자 중 '법조인 출신이면서 3선 이상' 요건을 충족한 사람은 12명이다. 이들 중 민주당 내에선 전현희·이언주 당선인과 박주민 의원의 법사위원장 임명론이 힘을 얻고 있는 걸로 알려졌다. 전·이 당선인은 법사위원장에 대한 의욕을 방송·인터뷰 등에서 공개 표현한 상태다. 박 의원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고민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총선 참패를 당한 국민의힘은 민주당에 비해 가용 인원이 한정적이다. 그래도 현재 법사위 여당 간사를 맡고 있는 정점식 의원이 3선으로 생환해 유력 후보군에 올라와 있다. 국회법에는 상임위원장은 교섭단체(20인 이상의 소속 의원을 가진 정당) 의석 비율에 비례해 배분한다는 규정 말고는 결격사유에 대한 내용이 없다. 상황에 따라선 현 법사위원장인 김도읍 의원(4선)의 재등판 가능성도 점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