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학폭 대책, 가해자 아닌 피해자 중심으로 바꿔야”
상태바
[기획] “학폭 대책, 가해자 아닌 피해자 중심으로 바꿔야”
  • 김승현 기자
  • 승인 2024.07.23 14: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육·홍보 위주에서 제보창구·전담기관 설치 등 대책마련 시급
지난 18일 충남에 위치한 초등학교에서 학생이 보호자와 함께 귀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 18일 충남에 위치한 초등학교에서 학생이 보호자와 함께 귀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매일일보 = 김승현 기자  |  학교폭력이 매해 늘자 가해자 아닌 피해자를 중심으로 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3일 서울경찰청 ‘올해 상반기 학교폭력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학교폭력 신고 건수는 4351건에서 4668건으로 7.7%, 검거 건수는 1032건에서 1344건으로 30.2% 늘었다.

가장 많이 늘어난 유형은 성폭력과 성희롱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상반기 신고 건수는 253건에서 662건으로 161.7% 늘었다. 검거 건수는 217건에서 315건으로 45.2% 증가했다. 신고된 622건 중 강제추행(55.9%)이 가장 많았고 성희롱(16.8%)과 카메라등이용촬영죄(11.3%)가 뒤를 이었다.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 성희롱이 전체 63.1%를 차지하며 수법도 진화했다. 얼굴을 합성하는 ‘딥페이크’ 성범죄 신고는 상반기 20건 접수됐다. 실제 지난 2022년 법원은 같은 학원 여학생 얼굴을 다른 인물 나체사진에 합성해 신상정보를 유포한 중학생 2명에게 실형(2년)을 선고했다.

학교폭력 발생 시 가해자 ‘맞학폭’이나 ‘교사무고죄’ 및 ‘시간끌기’ 등 사법절차를 악용하는 사례도 늘었다. 실제 울산지역 학교폭력 피해자는 가해자를 신고한 뒤 자신도 가해자가 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가해자 학부모가 피해자가 언어폭력을 행사했다며 ‘맞학폭’을 제기한 것이다.

지난해 10월 울산지법에서는 학폭 사건을 학교폭력위원회로 넘긴 교사가 무고죄로 신고됐다. 가해자 측은 학교폭력 징계 관련 결정에 불만을 품고 교사를 상대로 4000만원에 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가해자의 사소한 잘못을 피해자가 신고했는데 교사가 이를 무시했다며 처벌을 요구했다.

무죄나 쌍방학폭을 주장하고 무리한 증거를 요구하며 시간을 끌기도 한다. 학폭 심의 후 결과에 불복해 행정심판위원회에 징계처분 취소를 청구한 사례도 있다.

현행 학교폭력 예방 대책은 대부분 교육과 홍보에 집중됐다. 교육적 개입은 학폭이 발생한 이후에나 가능한 것으로 적혀있다.

울산시의회 권순용 의원은 “학교폭력 발생 후 학부모 개입이 시작되면 학생들간 화해는 사실상 어렵다”며 “예전처럼 서로 싸우더라도 화해하며 돈독해지는 일을 기대하기 어려워 학교폭력 발생 전 갈등을 파악하고 화해를 유도하는 사전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 의원은 “갈등 징후를 파악할 수 있게 학생 제보 창구와 초기 갈등상황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상담매뉴얼 및 전담조직이 마련된다면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교육 효과를 부정하긴 어렵지만, 기존 방법으로 갈등을 해결하고 학폭이 감소할 것으로 기대하는 건 안일한 태도”라고 말했다.

어린이인 초등학생은 이러한 교육부 차원 선도 지침이나 예방 제도마저 없어 학폭에 더 노출돼 있다. 푸른나무재단 ‘2023년 전국 학교폭력·사이버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초등학교 학폭 피해 경험 비율은 7.7%다. 이는 상급 학교인 중학교(6.4%)와 고등학교(4.9%)보다도 높은 수치다.

또래 관계가 중요한 초등학생 특성상 일반적인 대책보다 학부모 교육이나 처벌강화가 필요하단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실제 뉴욕주 일부 도시는 학생 학폭에 대한 벌금을 부모에게 매겼다. 교사단체는 교권 보호를 위해 관련 사건이 발생하면 교육구나 관할 경찰서에 보고하는 방법으로 교권을 보호하기도 한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현재 교권보호위원회 등은 사실상 사후조치 수준”이라며 “해외에서는 학부모가 민원을 제기하려면 행정실과 상담사를 통해야 하며, 교사가 원하거나 꼭 필요한 때가 아니면 만남을 허락하지 않아 교권침해 발생을 예방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이승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실질적인 학폭 피해자 보호를 위한 대책은 없다”며 “장기적으로 피해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구조여야 하나 현장(학교)에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사실상 무방비 상태에 있다고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분리조치가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장치지만, 이것만으론 어려움이 있다”며 “위원회 단계에서 가해자 의견이 많이 수렴되는 현 구조를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바꾸고, 학폭 결과를 지우거나 할 때 피해자 의사를 묻거나 동의를 구하는 절차도 마련하는 등 피해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하고 피해자 중심에서 살피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좌우명 : 언제나 긍정적인 '라온'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