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안종열 기자 | 대기업 10곳 중 7곳은 내년 투자 계획이 없거나 아직 수립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내외 경제여건이 어려운 가운데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 불확실성이 가중되면서다.
3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에 따르면 지난달 13~25일 여론조사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매출액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2025년 투자계획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68.0%는 내년도 투자계획을 아직 수립하지 못했거나 투자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각각 56.6%, 11.4% 등이다.
계획을 수립했다는 응답은 32.0%였다. 계획 미정 기업 비중은 지난해 조사 때보다 6.9%p 늘었고 계획 없음도 지난해 대비 6.1%p 늘었다.
투자계획이 미정인 기업들은 계획을 수립하지 못한 이유로 △조직개편·인사이동 △대내외 리스크 영향 파악 우선 △내년 국내외 경제전망 불투명 등을 꼽았다.
투자계획을 수립한 기업을 대상으로 2025년 투자계획 규모를 묻는 질문에는 59.0%가 올해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답했다. 투자 규모를 줄일 계획이거나, 투자계획이 없는 기업들은 △2025년 국내외 경제전망 부정적 △국내 투자환경 악화(상법 등 지배구조 규제 강화 등) △내수시장 위축 전망 등을 이유로 지목했다.
전체 응답기업의 77.8%는 내년 자사의 설비투자가 기존 설비를 유지·개보수하는 수준에 머물 것이라고 전망했다. 적극적으로 설비를 늘리겠다는 응답은 18.9%에 그쳤다.
한경협 관계자는 “투자 양적인 면에서 내년도 투자를 늘리지 않겠다는 기업이 대부분이고 질적 측면에서도 소극적인 유지·보수를 택한 기업이 다수”라며 내년도 기업들의 공격적인 투자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기업들은 내년도 기업 투자에 큰 영향을 미칠 주요 리스크로 △글로벌 경기 둔화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고환율 및 물가상승 압력 △보호무역주의 확산 및 공급망 교란 심화가 뒤를 이었다.
한경협은 “내년도 글로벌 경기가 올해보다 소폭 둔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기업들은 보호무역주의 심화에 따른 글로벌 교역 위축, 지정학적 리스크 지속에 따른 공급불안 등 경제 하방 위험에 주목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국내 투자를 저해하는 가장 큰 애로 사항은 △설비·R&D투자에 대한 세금·보조금 등 지원 부족으로 조사됐다. 이외에도 기업들은 △ESG(상법 등 지배구조, 환경, 사회) 관련 규제 △설비투자 신·증축 관련 규제(입지규제, 인허가 지연 등)이 주된 애로 요인이라고 밝혔다.
국내 투자 환경 개선을 위해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으로는 △자금조달 등 금융지원 확대 △법인세 감세·투자 공제 등 세제지원 강화 △지배구조 및 투자 관련 규제 완화 등을 꼽았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과거,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기업 투자가 위기 극복의 열쇠가 되어왔는데, 최근 기업들은 투자 확대의 동력을 좀처럼 얻지 못하고 있다”며 “기업들이 투자계획을 조속히 수립할 수 있도록 경영 불확실성을 크게 가중시키는 상법 개정 논의를 지양하고, 금융‧세제지원 등 과감한 인센티브로 적극적인 투자를 유인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