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정두현 기자 |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지난 7일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자동 폐기됐다. 이로써 12·3 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여야 '엔드게임'이 잠시 소강기를 갖게 된 것으로 보이지만, 이 또한 제2 혼돈 정국의 서막에 불과하다는 분석이다.
윤 대통령으로부터 잔여 임기 및 국정에 관한 전권을 일임받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한덕수 국무총리는 8일 대국민 공동담화를 내고 국정 공백이 없도록 전 분야에 걸친 비상대응체제를 유지하는 한편, 윤 대통령을 옹호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 로드맵도 구체화한다는 방침이다. 또 국정 정상화를 위해서는 내년도 정부 예산안 처리가 절실한 만큼, 야당의 협조를 당부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지난 3일 계엄 사태로 내란죄 혐의를 받는 윤 대통령 이하 정부·군·경·정보 당국 고위 관계자들 수사에 대해서도 철저히 선을 긋는다는 방침이다.
그럼에도 야당은 전날 윤 대통령의 탄핵안 무산으로 "한동훈-한덕수 비상체제와는 어떠한 협조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윤 대통령 탄핵을 반드시 관철한다는 입장이어서, '시계제로 정국'에 접어들고 있다는 평이다.
윤 대통령의 2선 퇴진으로 '2한(韓-韓) 투톱 체제'가 들어선 여권은 국정 정상화 방편으로 현재 '비상거국내각'과 '대통령 임기단축 개헌'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전언이다. 앞서 민주당 일각에서도 윤 대통령이 국정 일선에서 물러나는 대신, 야당 인사를 내각 요직으로 발탁해 여야 협치를 도모하는 거국내각이 언급된 바 있다.
다만 거국내각은 야당 동의가 필수적인 사안인 만큼, 윤 대통령 탄핵 무산에 극도로 반발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당정의 거국내각 제안을 수용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대통령 임기단축 개헌도 나라 근간인 헌법을 개정하는 고도의 작업인 만큼, 상당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어서 당장의 국정 타개책이 될 수 없다는 관측이다.
여야 '끝장 대치'도 이어질 전망이다. 여당은 전날 윤 대통령 탄핵안 표결 직전 본회의장에서 집단 퇴장했다. 국민의힘 안철수·김예지·김상욱 의원이 표결에 참여했지만, 나머지 의원들의 '노쇼(no-show)'로 표결 정족수인 200명이 채워지지 않아 결국 탄핵안은 무산됐다.
이에 야당은 윤 대통령 엄호에 마지노선을 그은 여당을 향해 '내란수괴 옹호'라 반발하며 주 단위로 탄핵 추진을 이어가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당장 오는 14일 본회의 표결을 목표로 윤 대통령 탄핵안을 재상정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야당은 김건희 여사에 대한 특검과 상설특검도 병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소수여당인 국민의힘으로선 가뜩이나 이탈표 리스크가 증폭된 상황에서 야당발 탄핵 시도에 계속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한 대표가 당초 윤 대통령 '탄핵 찬성' 입장을 뒤집고 '질서있는 퇴진'이라는 모호한 입장을 급선회한 것도 향후 야당과 극심한 마찰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이다. 한 대표는 이르면 오늘(8일) 윤 대통령에게 하야를 권한다는 방침이나, 윤 대통령이 최소 수개월은 임기를 보장받을 공산이 크다는 게 정계 중평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항소심 등 사법리스크를 감안한 처사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으로부터 사실상 정권 바통을 이어받은 한 대표가 조기 대선 여부를 저울질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윤 대통령 계엄 시도와 탄핵 무산에 따른 국가 전면적 위기 시그널도 파생하고 있다. 당장 경제적으로 내수 위축, 증시 침체, 환율 변동, 준예산 사태 등 다발적 악재가 예상되고 있고, 외교적으로도 내달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둔 상황에서 굳건했던 대미 외교 노선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아울러 정권 좌초 위기에 동북아 자유민주주의 전선을 공유했던 일본과의 외교 기류도 달라질 수 있다. 이 밖에 윤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시민사회 대규모 집회와 파업이 촉발하고 있다는 점도 사회적 불안요소로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