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보훈지청 채인수 보훈과장
[매일일보 이창식 기자] 을미년 새해가 밝은지도 벌써 두 달이 훨씬 지났다.
소위 사회 지도층으로 불리며 존경의 대상이 되었던 자들의 이 같은 부정․비리를 뉴스로 접하는 국민들의 비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작년에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실시한 “국민의 부패인식․경험 조사 결과” 우리 사회가 부패하다고 응답한 국민이 69.4%에 달하는 것도 그리 놀라운 일만은 아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은 썩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약점을 지녔다.
인류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수많은 역사의 주체들이 부패와의 싸움을 계속했지만 싸움에서 승리보다는 오히려 처절한 패배로 끝났던 사례가 얼마나 많았던가.
하지만 인류사가 멸망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그런 썩고 부패한 세상에서도 깨끗한 공직사회를 만들기 위해 맡은 바 소임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대다수 공무원들과 더불어 한줄기 청량제처럼 깨끗하고 청렴한 청백리들이 끊임없이 배출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표적인 청백리로 조어와 허자가 있다.
조어(趙峿)는 세종 5년(1423)에 과거에 급제하여, 문종 2년(1452)기주관으로 「세종실록」을 수찬했으며, 세조 때 첨지중추원사가 되어 원종공신 2등이 된 인물로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가 없을 만큼 청렴했다.
그가 합천군수가 되었을 때 아들과 사위와 노복들이 오가는 경우 모두 자기 양식을 싸가지고 다니게 할 정도였다.
서거정의 「필원잡기」에는 조어에 대해 “천성이 청렴하고 근엄하여 후에 늙어 시골집에 물러나 살 때에도 집안이 텅 비어 아무것도 없었으나 털끝만치도 남에게 요청한 바가 없으니 참으로 독실한 군자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그는 집이 지극히 가난하여 일찍이 예조랑으로 있을 때, 방세에 몰려 다녔으며, 나무와 쌀을 이어대지 못했다. 동료가 쌀 3말을 가지고 방문했으나 받지 않았다고 한다.
명나라 허자(許鎡)는 가선(嘉善) 현령 때 청렴하고 강직하여 부임 시에 겨우 아들하나와 종 하나를 데리고 왔다.
겨울철에 그 아들이 추위를 이기지 못하여 밖에서 숯을 구해 불을 피우자고 하자 허자는 창고에서 막대기 한 개를 가지고 오게 하여 아들에게 주면서 “이것을 밟아 굴리도록 하자. 발이 저절로 따뜻해 질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허자에 대해 다산 정약용은 ‘이는 너무 각박해서 인정에 가깝지 않으니 본받을 것이 못된다.’ 고 했다.
다산의 시각으로 보면 조어가 아들과 사위와 노복들에게 자기 양식을 싸가지고 다니게 한 것과 양식이 떨어졌는데도 동료가 가지고 온 쌀을 받지 않은 것은 너무 각박하게 느껴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조어와 허자는 공직자로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극한의 청렴을 실천했다.
청렴을 실천한 조어와 허자도 훌륭하지만, 뼈를 깎는 가난속에서 청렴을 지킨 가족들도 조어와 허자 못지 않다. 청렴의 화신이었던 이들의 삶과 교훈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지난해 있었던 세월호 참사나, 지금 수사가 진행중인 포스코 건설 비자금 사건 등 나라와 사회에 큰 해악이 되는 사건들이 끊임없이 일어날 때마다 자연적으로 극한의 청렴을 실천한 조어나 허자와 같은 분들이 그리운 것은 어쩔수 없는 것이다.
과거에는 몇몇 탁월한 청백리들이 강인한 인내와 절제력으로 부패의 사슬을 끊으려는 높은 청렴정신을 발휘해서 인류가 생존할 수 있었다면 현 세대에서는 작게는 공직자 한사람 더 나아가 국민 누구나 청렴 실천을 반드시 실현해야할 숙명으로 받아들여서 깨끗한 사회 구현, 더 나아가 대한민국이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수 있는 날이 하루속히 다가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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