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김시은 기자] 개인이 대기업을 상대로 펀드투자기법에 대한 특허침해 심판을 청구했다. 알고 보니 개인은 증권사 직원이었고 대기업은 그가 다니는 증권사의 경쟁사였다. 그가 등록한 특허는 증권사가 보유한 특허권이 40여개밖에 되지 않는 금융특허(BM)로, 주식투자방법에 관한 특허로선 법인이 아닌 개인이 특허를 취득하기는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회사에 자신의 특허를 위임하지 않았고 특허를 지키기 위한 나홀로 싸움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가 싸우는 대상이 경쟁사인 것이 알려지면서 일각에선 ‘회사와의 연관성’이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회사는 그가 가진 특허로 상품을 개발 중에 있으면서도 특허분쟁과는 관련이 없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매일일보>은 증권사 직원이 금융특허를 취득하고 나홀로 특허공방에 나선 사연을 취재해봤다.
“기술적 사상의 핵심내용을 그대로 옮겨 일부 항목만 유사하게 변경하고 상품화 하는 베끼기 관행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 이는 최근 펀드투자기법으로 하나대투와 삼성증권에게 특허침해 심판을 청구한 우리투자증권의 조영호(33)과장의 말이다. <매일일보>이 만난 조 과장은 이번 특허공방이 “개인 대 대기업 또는 경쟁사를 밀어내기 위한 특허 분쟁”으로 비춰지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시장에 만연해있는 베끼기 관행이 금융기관간의 경쟁력 약화와 소비자의 후생감소로 이어진다”며 “결국 최대 피해자는 소비자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우리투자 조영호 과장 보유 ETF 특허, 하나대투·삼성증권 일부 베껴 출시해 심판청구
조 과장 “업계 베끼기 관행 근절돼야”VS경쟁사 “특허침해소지 없다는 법률자문 받아”
특허개발 우연한 기회에?
그가 특허를 개발하게 된 시점은 지난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은 우리투자증권신사업전략부에 있지만 당시 영업점에서 고객관리를 해오던 조 과장은 ETF(상장지수펀드-지수와 동일하게 움직이는 인덱스 펀드)를 이용해 보다 유용하고 합리적인 투자를 하는 것에 골몰해 있었다고 한다. 사실 그의 고민은 그보다 앞선 신입사원시절부터 시작됐는데, 한 자산가가 100억원의 돈을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방법으로 투자 할 수 있는 주식투자 방법을 물었던 것이다. 이후 자산가는 종적을 감췄지만, 그는 그 자산가의 투자 전략을 대신 짜면서 위험관리에 강하고 투자 시점을 파악하기 쉬운 투자운영방법을 찾아냈다.그가 고안해낸 방법은 ETF를 활용해 지수가 상승할 때보다 지수가 하락할 때 더 많은 금액을 분할 매수하는 것으로 상승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낮지만 하락장에서는 손실률을 낮추면서 수익까지 챙길 수 있는 방법이다. 당시 그는 자비를 털어 투자기법의 효용성을 실험한 뒤, 고객들의 자산관리에도 이 기법을 사용했고 고객들사이에서의 반응도 괜찮았다고 한다. 급기야 기계공학 박사였던 한 고객은 그에게 특허출원을 제안했고 그는 지난 2008년 8월 ‘금융펀드 운용방법’으로 해당 특허를 등록(제084246호) 하게 된다.일부 유사해도 특허침핸 아냐?
관련 없다면서 상품개발 왜?
한편, 일각에선 조 과장이 경쟁사를 상대로 특허 공방을 벌이는 것에 대해 회사와의 연관성을 제기하고 있다. 특허권은 조 과장이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로 우리투자증권은 조 과장이가지고 있는 특허를 토대로 상품을 개발 중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투자 관계자는 <매일일보>과의 전화 통화에서 “조 과장의 특허공방은 회사와 관련이 없다”면서도 “개발은 하고 있다”고 말해 의아함을 사기도 했다. 이는 결국 회사가 조 과장의 특허를 이용해 상품 개발은하면서도 홀로 대기업과 싸우고 있는 조 과장의 특허공방은 도와주지 않는다는 얘기였다.더욱이 조 과장은 자신이 특허를 토대로 한 상품개발엔 직접적으로 참여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간접적으로 참여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개발팀이 따로 있다”면서 “내가 주축이 돼서 개발을 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때문에 일각에선 회사가 개인을 내세워 특허분쟁을 하고, 이미지가 상할 것을 염려해 뒤로 빠져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투자 홍보실 관계자는 <매일일보>과의 전화통화에서 “회사가 특허를 보유할 정도로 유능한 직원이 있다는 건데 이미지가 상할 일이 뭐가 있냐”며 터무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그러나 정작 조 과장은 <매일일보>과의 인터뷰 말미에 “회사의 이름이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해, 회사가 특허공방으로 더 이상 이름이 거론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짐작케 했다.
조 과장은 하나대투에 이어 삼성증권에도 펀드투자기법에 대한 특허침해 심판을 청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금융상품 특성상 유사한 구조라도 일부 차이점에 따라 다양한 상품이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특허심판원의 판단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