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인=중독자=미치광이?
[매일일보=송병승기자] KBS의 장수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VJ특공대>가 끝없는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것도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그리고 2월18일 방송분까지 한 달에 한 번꼴로 사과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프로그램 폐지 가능성까지 거론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VJ특공대>는 지난해 12월 방송에서 국내에 직장인과 학생으로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들을 한국의 아이돌 스타를 좋아해서 찾아온 관광객인 것처럼 조작 연출해 방송한 사실이 들통나 방통위로부터 경고 조치를 받았다.이어 올해 1월에는 ‘겨울여행’이라는 주제로 겨울 산을 등반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방송했는데, 이 과정에서 취사행위가 금지된 산속에서 라면을 끓여먹고 있는 등산객들이 모습이 담겨 시청자 사과를 해야 했다.2개월 연속 물의를 일으켰으니 몸조심을 할만도 한데, ‘중독’이라는 주제로 지난 18일 전파를 탄 방송분에서 ‘스피드 중독’에 대해 소개하면서 카레이싱 동호회 사람들을 중독자 취급한 것이 문제가 됐다. 전체 방송분 중에서 극히 일부인 약 2분의 짧은 방송내용이 파장을 낳은 이유는 무엇인지 추적해봤다.드리프트 동호회 “방송 제작진이 처음 원했던 것은 ‘폭주족 섭외’였다”
섭외 실패한 제작진 “스피드 즐긴다는 게 어떤 건지 알고 싶다” 유인
전남도청 F1조직위도 피해자 “경기장 소개도 해준다고 해서 믿었는데…”
문제 터지자 동호회 찾아가 사과한 제작진, 대외적으론 “조작 없다” 강변
불법레이스와 동호회 연습이 동급?
방송 앞부분에는 한 대형병원에서 만난 도박, 알코올 중독으로 치료 받고 있는 사람들이 모습이 등장했고, 자막에는 이들을 모두 ‘중독자’로 지칭했다. 이후 뉴스의 한 화면이 흘러나온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던 ‘심야 도로에서 벌어진 광란의 질주’와 관련된 뉴스와 자료화면 들이다. 더불어 인천의 한 도로에서 ‘폭주족’들의 레이스 영상을 촬영한 장면이 계속 된다. 영상과 함께 “자신은 물론 타인까지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위험천만한 순간, 이들은 대체 왜 질주를 멈추지 않는걸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자칭 스피드 중독자라는 이들을 찾아가 봤는데”라는 성우의 멘트가 나오며 한 드리프트 동호회의 영상이 이어진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약 1분간 이어진 이 동호회 회원들의 연습 주행 영상과 짤막한 인터뷰가 많은 자동차 동호인들과 모터스포츠 팬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편집된 영상은 전남 영암 F1 경기장에서 촬영됐다. 불법적으로 공도에서 행해지는 상황이 아닌 공식적인 경기장에서의 연습 영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앞부분에 나온 불법레이스와 동호회의 연습 영상을 연결하면서 동호회인들 역시 불법레이스를 하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것처럼 비춰준 것이다.니들이 드리프트를 알어?
짤막한 방송이지만 이날 방송을 본 자동차 동호인들과 모터스포츠 팬들은 “VJ특공대가 조작 방송을 했다”면서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19일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트 판의 ‘톡톡’ 게시판에 ‘VJ특공대가 여전히 연출방송을 하고 있다’는 글이 게재됐다. <VJ특공대>가 방송한 ‘스피드 중독’편의 영상과 인터뷰 내용이 교묘하게 편집되면서 카레이서들이 졸지에 불법폭주자가 됐다는 내용이었다. 이 게시물에는 해당 동호회 회원들이 ‘VJ특공대’와 촬영한 증거 영상도 함께 올라왔다. 자신을 모터스포츠 팬이라 밝힌 작성자는 “(영상에 나온 동호인 분들은) 오로지 이날의 촬영만을 위해 전날 밤을 새워 서울에서 국제 F-1서킷이 있는 전라남도 영암군까지 찾을 정도로 이분들은 '중독'이 아닌 '열정' 이 대단한 분들”이라고 밝혔다.그는 “이들은 타인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고 무차별 폭주를 일삼는 분들과는 다른 분들”이라며 “그런데 정작 방송에서는 ‘중독’이라는 정신질환에 빗대어 이 분들을 '스피드 중독자'라고 보도했다”고 분노를 표했다.작성자는 “이분들이 보여주는 퍼포먼스가 스노우보드를 타듯 노면 위를 미끄러지는 ‘드리프트’라는 일말의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드리프트 문화에 대해 미처 모르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마치 고속에서 중심을 잃고 차가 미끄러지는 것처럼 묘사했다”고 지적했다.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갖 편집수단을 동원해서 ‘정신질환자’로 몰아가는 연출에 정말 기가 차다”고 밝혔다.제작진 “조작 아니다” 버티기?
‘스피드 중독자’ 방영분에 대한 논란이 일파만파로 커지자 <VJ특공대> 측은 해명에 나섰다. 프로그램 제작진은 22일 보도자료를 통해 “일부에서 제기한 조작 의혹은 사실이 아니며 사전 동의 아래 제작됐다”는 공식입장을 발표했다. 제작진은 이어 “‘당신도 예외일 수 없다! 중독’ 코너 취재에 앞서 스피트 중독 등 신종중독의 심리상태를 듣기 위한 것이라는 기획의도 전반에 대해 출연자들에게 충분히 설명했고 출연자들도 이같은 입장에 동의했다"고 주장했다.제작진은 끝으로 “VJ 특공대 제작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동호인들의 반발이 있었던 것에 대해 동호인들에게 충분한 양해를 당부한다”는 말로 보도자료를 마무리했다.한편 보도자료에서 느껴지는 당당한 태도와 달리 제작진 관계자들은 해명 보도자료를 낸 이후 촬영분에 등장하는 카레이싱팀을 찾아가 문제를 일으킨 해당 방송분의 기획과 편집에 대해 사과했다.본질은 외주시스템 문제
한편 이번 방송분을 비롯해 3개월 연속 <VJ특공대>에서 논란이 불거진 배경에 대해 거대 방송사들이 남발하고 있는 외주제작시스템 자체의 구조적 결함 때문이라는 지적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유사한 성격의 다른 프로그램들과 마찬가지로 <VJ특공대>는 KBS 채널을 통해 방송되지만 실제 프로그램 제작은 외주제작팀에서 한다. 기획, 촬영, 편집까지 전과정을 외주사에 맡기고 있는 것이다. 매주 월요일 KBS 측과 외주제작팀이 기획회의를 하고 아이템을 논의, 선정하는 과정이 있기는 하지만 최종 검토승인을 제외한 개별 방송분의 실제 취재과정과 편집 등 전과정을 외주제작사가 진행하기 때문에 제작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소지에 대한 사전검토가 불가능하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기획회의 과정에선 논란이 될 만한 소지의 아이템을 선정했다는 것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외주제작팀의 촬영, 편집이 종료되면 다시 KBS팀과 영상을 보고 방송 여부를 결정한다. 결국, 직접 촬영과 편집을 하지 않은 승인권자는 촬영, 편집자의 의도를 100%로 파악 할 수 없고 영상만을 보고 방송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이번 ‘스피드 중독’처럼 방송에 나간 뒤 논란이 발생할 소지는 충분히 남아 있는 셈이다.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