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3수 도전... YS로 정계입문 ‘깜짝 놀랄 젊은 후보’
[매일일보제휴사=폴리뉴스] 지난 20일 민주당 첫 경선이 인천에서 치뤄졌다. 승자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했던 조순형 후보가 아닌 이인제 후보였다. 이를 두고 민주당 경선이 10%조차 안되는 저조한 투표율을 보였기 때문에 조직세에서 강한 이인제 후보가 유리했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하지만 일단 조순형 후보에게 쏠려있던 여론을 환기, 새로운 대세론을 끌어내는 계기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2007 대선까지 이 후보의 대권 도전은 3번째. 이 후보는 3수생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경선 불복’이라는 꼬리표에 ‘철새정치인’이라는 불명예스런 닉네임도 유명하다. 이런 가운데 이 후보가 이번 대선을 발판 삼아 정치적 명예 회복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두 번의 대선으로 얻은 ‘경선불복’ 꼬리표이인제 후보는 지난 7월5일 대선출마를 선언하면서 “당시 40대의 젊은 저로서는 독자출마를 바라는 국민의 여망을 저버리기 어려웠고, 2002년에는 집권이 확실해진 급진 노선을 추종할 수 없다는 일념으로 탈당을 결행한 것”이라면서 “돌이켜 보면 저에게 많은 허물이 있었고 지난 두번의 대선에서 국민의 뜻을 받들지 못했다”며 앞선 두 차례 대선에 대해 언급했다. 앞선 대선의 행적을 간과하고 넘어가기엔 짐이 너무 큰 탓이다. 9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그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깜짝 놀랄 젊은 후보’라는 발언에 힘입어 하루 아침에 급부상했다. 이 후보는 그 후 신한국당 경선에 출마했지만, 당시 ‘9룡’이 격돌한 신한국당은 결국 이회창 당시 후보를 선택했다. 이 때 이회창 후보는 지지율이 50%대까지 치솟아 사실상 대세를 굳히는 듯했다. 그러나 이회창 후보는 7월 임시국회에서 국민회의가 들춰낸 두 아들 병역비리 의혹으로 지지율이 급락, 국민회의의 김대중 후보와 이인제 경기지사에 이어 3위로 쳐졌다.이인제 후보는 이를 빌미로 9월 초 공개적으로 신한국당 후보교체론을 제기했다. 이후 이 후보는 9월 초 지사직 사퇴 의사에 이어 공식 탈당을 강행했고, 10월 신당 발기인 대회, 11월 ‘국민신당’을 창당하며 대통령 후보로 나섰다. 당시 이 후보는 일부 여론조사에서 이회창 후보를 앞서고 있다고 나올만큼 급격한 상승세를 타고 있던 상황. 이 후보는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을 가뿐히 뛰어넘고, 1위를 달리고 있던 김대중 총재까지 위협하는 듯 했다.그러나 국민신당 창당 후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회복되기 시작했으며, 이인제 후보의 지지율은 하락, 대선을 20여일 앞둔 시점에서는 김대중-이회창의 2강 구도로 좁혀졌고, 12월18일 선거결과 이인제 후보는 19.2%의 성적을 거두고 3위를 차지했다. 이 후보의 두 번째 대권 도전인 2002년, 새천년민주당 경선은 2월22일부터 이인제 노무현 정동영 한화갑 김중권 김근태 유종근 등의 각축전으로 시작, 경선 초반만 해도 당내에는 이 후보의 대세론이 당연시 됐다.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