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개점 어렵자 새 수익모델 SSM “절대 포기 못 해”
사업조정권 지자체로 이관…“강제력 없고 규제업종도 미미”
[매일일보=류세나 기자] 몸집을 줄여 골목 상권에 진출하려던 대형 유통업체들과 지역 소상공인들 간의 갈등이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4일 중소기업청이 기업형 슈퍼마켓(SSM) 자율조정권한을 시∙도지사에게 위임하고, 대기업의 유통업체 진출여부를 사전에 알 수 있도록 한 ‘사전조사신청제도’를 마련하면서 SSM의 골목진출에 제동이 걸리는 듯 보였다.
하지만 시∙도지사에게 위임된 권한은 어디까지나 ‘자율조정’일 뿐 강제성을 띠고 있지 않아 SSM의 입점 저지에 대한 효과는 미비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받고 있는 모양새다. 이런 가운데 입법기구인 국회에서마저 ‘SSM의 국회 입점’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어 곳곳에서 ‘민생을 돌봐야할 국회가 역으로 SSM 홍보에 앞장서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울 노원구 상계2동과 7동 상인들은 롯데쇼핑(주)가 이 일대 반경 700여m 안에 롯데백화점, 롯데마트를 뒀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롯데슈퍼까지 개점하자 지난 4일, 본격적인 ‘철시 투쟁’에 나섰다.롯데 ‘백화점-마트-슈퍼’가 장악한 골목
이들에 따르면 유통공룡 롯데의 ‘상계동 습격사건’은 백화점, 마트, 슈퍼 각각 1개소에 끝나지 않았다. 지난달 25일 상계 7동에 개점한 롯데슈퍼로부터 불과 5분여 거리의 상계2동에 또 하나의 롯데슈퍼가 개점을 앞두고 있는 것. 이에 지역상인들은 가게 문을 걸어 잠그는 이른바 ‘철시투쟁’에 나서게 된 것이다. 이 지역 슈퍼상인들을 비롯한 치킨, 제과점 업주 등 50여명은 이날 오전 상계2동 롯데슈퍼 입점예정지 앞에서 ‘유통재벌 롯데 규탄’을 외치며 입점반대 집회를 가졌다. SSM 논란이 불거진 후 서울지역 상인들이 ‘철시투쟁’에 나서기는 이번이 처음이다.“롯데는 아주 몰염치하고 부도덕한 기업입니다. 지난달 23일 몇몇 언론매체를 통해 상계7동을 포함한 서울지역 3개점에 대한 롯데슈퍼 개점을 보류하겠다고 대대적으로 떠들어 놓은 후 상인들이 안심한 틈을 타 25일 아침에 상계7점을 기습오픈했지 뭡니까. 대기업이면 대기업답게 행동을 해야지, 언론에 거짓정보를 흘리는 부도덕한 짓을 저지르다니요. 이게 이 지역 상인들을 기만한 것이지 무엇이겠습니까.”
상계2동에서 13년째 슈퍼를 운영해오고 있는 남철희(49)씨는 울분을 토했다. 가뜩이나 포화상태인 시장상황에서 새로운 업소가 개업을 해도 당장 생존권에 위협을 느낄 마당에 대기업까지 골목상권 경쟁에 뛰어드는 것을 보니 화가 치밀어 오른다는 것. 그나마 남씨의 가게가 있는 상계2점의 롯데슈퍼는 현재 개점 보류중이라 바로 옆 상계7동 슈퍼들보다 비교적 매출타격이 적은 편이다. 하지만 노원역을 중심으로 한 좁은 상권에서 상계2동에까지 SSM가 개점하게 된다면 이 인근 슈퍼들에 대한 타격은 상당할 듯 보인다. 남씨는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거기에 롯데슈퍼까지 가세해 손님들을 빼앗으면 앞으로 우리 같은 영세 상인들은 뭐해먹고 살라는 건지 모르겠다”며 “계속해서 SSM이 입점한다면 우리들 가게는 문을 열고 있어도 사실상 문을 닫고 있는 것과 똑같은 ‘개점휴업’ 상태와 바를 바 없다”고 성토했다.실제로 롯데슈퍼 상계7점 개점 이후 인근 슈퍼마켓 하루 매출은 이전과 비교했을 때 거의 절반에 가까울 정도로 급감했다는 게 상계동 롯데슈퍼 입점반대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의 주장이다.비대위 이상한 대표는 “7동의 한 슈퍼는 예전에 하루에 우유를 10개 정도 팔았는데 롯데슈퍼에서 가격이 싼 PB제품이나 끼워 팔기 등의 방법으로 운영하니까 요즘은 1개 파는 것도 어려울 지경이라고 하더라”고 전했다.그는 또 “롯데슈퍼가 입점한다면 우리 상인들은 당장의 매출감소로 월세를 밀리는 것은 물론이고 가게를 정리해야하는 사태에까지 다다를 것”이라며 “결국 영세상인이 떠난 자리를 대기업이 차지해 시장을 독점하게 되면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가게 된다”고 말했다.
생계 뒤로하고 ‘철시투쟁’ 나서
현재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는 노원지역에서만 연간 1천500억원(지난해 기준)에 달하는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롯데슈퍼까지 입점, 골목상권에 뛰어든다면 이 지역 영세상인들의 피해는 막대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상계2∙7동 지역 상인들이 ‘철시투쟁’을 벌였던 지난 4일, 중소기업청은 SSM에 대한 자율조정권한을 지역사정을 잘 알고 있는 시∙도지사에게 위임하고, 골목상권을 지키려는 소상공인들이 SSM의 시장진출 여부에 대해 중기청장에게 사전조사를 신청할 수 있게끔 한 ‘수·위탁 거래의 공정화 및 중소기업의 사업영역 보호에 관한 운영세칙 개정안’을 발표했다. 사실상 대기업의 SSM 입점을 규제하겠다는 의미다.
이런 가운데 중소상인살리기 전국네트워크는 지난달 31일 논평을 내고 “정부나 여∙야당 모두 SSM의 무분별한 입점에 제동을 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데 국회가 이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국회사무처의 행태에 대해 비판을 가했다.
이들은 논평을 통해 “국회는 입지 특성상 고립 상권이어서 상인들의 피해가 제한적일 순 있지만 ‘국회’라는 상징성을 감안하면 대형 유통업체의 무분별한 골목상권 진입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게 될 공산이 크다”고 밝혔다.국회마저 점령나선 SSM
SSM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국회 후생관의 면적은 약 330㎡(100평형)로 전형적인 SSM의 규모다. 하지만 후생관이 여타의 상권보다 수익률이 낮은 것을 감안하면 입점 입찰 경쟁률은 비교적 낮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대형 유통업체들이 입찰에 참여할 경우 국회에 입점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는 부여받을 수 있지만 수익률도 낮을 뿐더러 여론의 질타까지 무릅쓰면서 입점을 감행할 여지가 적다는 분석에서다. 더군다나 개인사업자들은 더더욱 수익이 적은 곳에 개점할 이유가 없다는 것. 이 같은 까닭에 여의도 정가를 중심으로 ‘국회와 거래를 하고 있는 금융기관인 농협에서 운영하고 있는 하나로마트가 입찰에 참여, 업체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