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투자 축소 계획인 국내 기업, 현지화 투자 부담 가중될 전망
[매일일보 이재영 기자]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보호주의 성향으로 미국과 중국의 맞불을 끄집어냈다. 주요 수출시장에서 보호무역 성향이 강해지며 현지화 투자를 강요받는 한국은 수요 강대국들 사이에서 치이는 ‘사면초가’ 형국이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이 미국의 반도체 견제에 맞서 5년동안 1430억달러를 보조금 성격으로 자국 내 투입하기로 했다. 이 예산은 내년 1분기 중 확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이 반도체 자급력을 높이기 위해 지원정책을 강화하는 성격이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역내 투자를 보류하고 미국 등에 신공장 투자를 추진하는 탈중국 대응 조치로도 해석된다.
미국의 IRA와 마찬가지로 중국도 자국내 반도체 생산 및 연구를 강화할 경우 보조금이나 세금 공제를 통해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해당 지원 금액은 사상 최대 규모가 예상될 정도로 중국이 미국의 견제에 대한 강력한 대응책을 꺼냈다. 우선적으로는 로컬기업이 수혜 대상이 될 전망이지만 중국의 반도체 자급력이 궤도에 오르기 전까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해외기업의 역내 투자를 붙들어 매는 수단으로도 작용할 듯 보인다.
바이든정부의 IRA에 불쾌감을 드러냈던 유럽도 맞불 성격의 보호주의 정책을 강화하는 추세다. 최근 유럽연합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에 합의하고 내년 10월부터 시범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CBAM은 탄소규제를 덜 받는 유럽 외 지역 국가의 수입 제품에 대한 환경부담요금(수입관세)을 높이는 식이다. 이를 통해 역내 생산 제품과 수입산의 가격경쟁력 균형을 맞춘다는 방침인데 무역장벽으로 작용해 역내 생산투자를 유도할 정책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 IRA와 비슷한 역내 투자 인센티브 정책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환경규제가 본질인 만큼 국내 수출산업 중 가장 영향을 받을 업종은 철강산업이 꼽힌다. 유럽이 탄소국경세를 강화해 수입산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 한국을 비롯한 수출국가는 유럽 현지화 투자를 강화할 수밖에 없는 만큼 IRA와 비슷해질 수 있다. 앞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미국 바이든 대통령에게 IRA 법안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어서 이번 방안도 미국을 견제하는 의도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유럽이 추진하는 핵심원자재법(CRMA) 법안도 연장선으로 해석되고 있다. CRMA는 내년 1분기 중 구체적인 내용이 확정될 전망이다. 대략적으로 주요 광물 원자재 수급이 국제 분업구조로 불안해지자 유럽이 중국산 등 대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수입 다변화에 초점을 맞추는 방안이다. 원자재 생산 과정에서 환경 규제를 강화하는 방식이 될 듯 보인다. 그러면 중국산 원자재를 사용하는 한국산 중간재나 완제품도 차별을 받을 수 있어 IRA와 같은 작용을 할 것이 우려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경기침체, 금리‧환율 등 환경에 대응해 유동성 방어 일환으로 투자를 줄일 계획”이라며 “그 속에 각국이 역내외 투자에 차별을 두는 보호무역 공급망 규제를 강화하면 해외 현지화 투자를 늘려야 하는 부담이 중첩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