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안광석 기자 | 최근 불거진 ‘빌라왕’ 및 ‘건축왕’ 전세사기 사건과 정치권의 대안 제시 등 일련의 과정을 보면 복잡을 넘어 착잡해지기까지 한다.
뚜렷한 해결책은 없는데 그 누구도 틀린 말은 하지 않고 있다.
우선 전세사기 피해자들. 이들의 상당수가 20·30세대 및 신혼부부들이다. 금수저가 아닌 바에야 사회경험이 적거나 경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저렴한 전세매물이 있다고 해서 아등바등 번 돈을 쏟아 부었을 뿐이다. 그런데 핵심인 피해보증금을 한 푼도 돌려받을 길이 없다.
물론 시중에는 부동산계약 관련 서적이나 온라인 콘텐츠가 넘쳐난다. 그러나 하루하루가 직장과 육아와의 전쟁인 사회초년생들이 전세계약에 허점이 있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인공지능(AI)이 아닌 바에야 복잡한 관련법들을 전부 숙지하고 다닐 수도 없고.
국내 전세 역사는 오래됐고 주택도 다양한 유형이 있다. 그만큼 파생되는 계약도 기하급수적이다. 세상에 100% 완벽한 법도 없다. 이후에도 빌라왕 같은 자가 작정하고 사기를 치면 눈뜨고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 이들이 결국 하소연할 곳은 국가뿐이다. 피해금을 모두 보전해주지는 못할지라도 한 번이라도 이들의 주장을 직접 들어보고 대책을 세우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그런데 전월세 한번 살아봤나 의심되는 관료들이나 국회의원들은 이 방법이 옳다 저 방법이 옳다 탁상공론만 해대고 있다. 전 재산을 잃어 하루하루가 지옥인 피해자들은 얼마나 분통이 터질 노릇일까.
사기피해액을 모두 국가가 부담하는 선례를 남길 수 없다는 정부 주장도 납득이 간다. 정부나 부동산 관련 전담기관 모두 국민혈세로 운영된다. 혈세로 모든 사기 피해를 보전하려 들면 그 부메랑은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
그렇다고 전세사기 피해를 단순 투자실패로 치부하기에는 사안이 너무 커졌다. 때문에 정부도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특별법을 최근 추진 중이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피해자들을 모두 구제하기는 어렵고 가장 현실에 가까운 구제방안을 찾는 것이 시장경제체제를 훼손하지 않는 길이다.
말은 간단하지만 쉽지는 않다. 정부 주장대로 애초 어디까지를 전세사기 피해로 규정할 수 있는지 기준 잡기가 애매하다. 기준을 잡는다 해도 피해자를 가장한 일명 ‘꾼’들은 나타날 수 있다. 상기했듯 국내 주택과 계약 유형은 다양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물고기까지 걸러낼 수 있을 정도로 법이라는 그물망은 생각보다 촘촘하지 못하다.
오죽하면 한국 외 채택 중인 해외국가들이 없다는 이유로 전세제도 폐지론까지 나온다. 부동산 불패라는 말이 있듯 한국에서 집값이 크게 하락한 사례가 드물다. 그러기에 투기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는 전세의 단점도 그리 크게 부각되지 않아 왔다.
그러나 금리가 어디까지 오를지 알 수 없는 현재는 상황이 다르다. 워낙 단점이 극명하기에 궁극적으로 전세를 폐지하고 해외처럼 월세나 매매 장려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도 틀리지는 않다고 본다.
다만 전세는 수요가 꾸준하다. 국내에만 있는 제도지만 오랜 기간 서민의 주거사다리로서 역할을 해왔다. 국내 정치권에서도 정치적 의도는 둘째치고서라도 세금혜택 등으로 전세제를 적극 장려해온 것도 사실이다. 현실적으로 전세제 폐지는 어렵다는 의미다.
시황이 침체되면 전세사기 등 범죄도 늘어나는 법이다. 정부가 전세 관련 금융 및 보증상품에 대한 공공관리 강화나 집주인의 전세 반환 의무화, 중개업자 자격 강화 및 문제 물량 거래에 대한 처벌 강화 등 안전장치를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다.
다만 이는 중장기대책일 뿐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고생하는 선의의 피해자들의 피눈물을 닦아줄 단기대책은 전무하다. 결국 당장은 수요자들 스스로가 사기에 당하지 않도록 똑똑해질 수밖에 없다는 소극적 대책 뿐. 문제점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할 언론인으로서 착잡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