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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신문지상의 정치면과 사회면이 혼동되기 시작했다. 정치면에서 고소·고발, 수사, 기소, 공판과 같은 사회면에서 많이 보던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자연스러운 단어가 돼버렸다. 매주 빠지지 않는 정치면 기사가 재판에 대한 기사와 증언의 내용이 되었고, 정치인에 대한 수사가 주요 정치 기사가 돼버린 것이다. 어디가 서초동이고 어디가 여의도인지 헷갈릴 정도다.
부도덕하거나 법률을 위반한 정치인을 수사하고 엄단하는 것은 정치 선진화에 중요한 요소다. 도덕성은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우선적인 덕목이라는 점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때문인지 정치면을 보면 도덕성을 갖춘 정치인은 없는 것인가라는 생각도 든다.
이러한 현상이 '정치의 사법화' 문제인지, '사법의 정치화' 문제인지는 알 수 없다. 넓게 보면 정치적 행위와 적극 행정에 사법적 판단이 강하게 접근하면서부터인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무능한 정치인들이 사법을 이용해 정치를 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나온다.
다만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두고 여야 갈등은 그나마 '건전한' 우리 정치의 단면이라 할 수 있다. 국회를 통과한 법안을 대통령이 헌법상 거부권을 행사했고, 국회 재의 절차에서 부결됐다. 민주주의의 삼권 분립, 균형과 견제라는 원칙이 제대로 작동한 모습에서 우리 정치 시스템의 신뢰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후 당정의 대책은 양곡관리법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전략작물직불금과 쌀값 안정화였다.
언제쯤 정치면에서 식량 안보에 대한 당정, 야당의 진지하고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지고 향후 계획이 발표돼 이를 토대로 정책적 논쟁을 벌이는 여야 의원이 등장해 찬반을 묻는 여론조사를 볼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는 오늘만 사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슈를 만들어내서 인지도를 높이고 인지도 바탕으로 진영의 지지를 받는 방식의 정치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정책을 통해 지지를 이끌어 내는 것이 오랜 시간이 걸리고 어렵다는 측면에서 사법적인 방법을 통해 이슈를 생산하고 상대방에게 타격을 가하는 방식이 우리 정치의 모습이다. 대한민국 정치에서 살아남기 위한 정치인들의 노력이 정책에 대한 연구나 노력보다는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방향으로만 가고 있다. 이러한 작태들은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그 빈도가 잦아지고 양태도 다양해지면서, 수준도 더 처참할 것이다.
결국 나서야 하는 것은 국민인데 정치를 향한 불신, 혐오가 만연한지 오래여서 기대를 접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절망적인 생각이 든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선거제도라는 시스템이 국민들 손에 쥐어주는 가장 강력한 무기인 '투표'는 민주주의 시민의 고통이자 희망이다.
공동체 미래를 위해 어떤 정치인이든 '표를 던져야' 한다. 최악과 차악에서 선택하는 것도 민주주의 시민의 숙명이다. 정치권에도 늦었지만 바랄 뿐이다. 국민은 어렵다. 고통스러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고 당선만을 꿈꾸지 않는 미래를 생각하는 정치인이 조금이라도 살아 생존할 수 있는 대한민국 정치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