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과 함께 5인방은 3인방이 됐지만 '사랑의 신발'은 계속 된다.
할아버지들이 만드는 사랑의 신발. 50년 넘게 구두만 만들어온 구두장이 할아버지들이 장애인을 위한 맞춤형 특수화를 만든다는 이야기가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은 2003년이었다. 발이 뒤틀리거나 변형돼 보조기구 없이는 한 걸음도 걸을 수 없던 장애인이 자신에게 딱 맞는 신발을 신고 지팡이를 던지고 걸어나갔다는 미래재활제화연구소의 기적 같은 이야기가 여러 신문과 방송 등 언론매체에 소개됐고, 2004년에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유명세를 타면서 미래제화로 전국을 넘어 외국에서까지 일감이 밀리기 시작하자 할아버지들은 자신의 건강을 돌아볼 새도 없이 잠도 거르고 밤을 지새면서 신발을 만들어야했다.
고 강학수, 고 이재양, 박정희 할아버지 3분이 창립멤버로서 '미래재활제화연구소'의 문을 연 것은 1996년이었고, 일을 시작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손기선 할아버지, 2003년에 염귀근 할아버지가 합세하면서 구두장이 할아버지 5인방은 제2의 전성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흐르는 세월을 거스를 수 없는 탓에 5인방은 4인방으로, 그리고 다시 3인방으로 줄어들었다. 미래제화의 창업 대표였던 강학수 할아버지가 2005년에,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대표를 맡았던 이재양 할아버지는 2008년에 세상을 떠나셨다.
지금 미래제화에는 박정희, 손기선, 염귀근 3명의 할아버지와 고 이재양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연구소의 경영전반을 맡게 된 이재양 할아버지의 딸 이은용 실장이 근무하고 있다.
이 실장에 따르면 이재양 할아버지는 연구소가 알려지면서 작업량이 밀려들자 무리하게 작업하면서 허리와 목 디스크에 심장수술까지 받아야했고, 2008년 3월 심장병으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오직 구두 생각뿐이어서 유언도 "연구소 꼭 잘 지켜라"였다고 한다.
장애인특수화, 2005년부터 건강보험 지원
한편 장애인 특수화라는 분야가 시작된 초창기, 국내에서 장애인특수화를 만드는 곳은 미래제화를 포함해 단 두 곳이었다고 한다. 미래제화연구소에 대한 여러 언론의 인터뷰를 통해 할아버지들은 "누군가 꼭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 일을 한다고 말했고, "우리가 마지막이 아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장애인 특수화는 신발 하나를 만드는데 보통 열흘의 공정이 걸리기 때문에 세 사람이 하루에 평균적으로 생산해내는 신발의 양은 한 켤레이다.
가장 좋은 재료로만 만들고, 한 켤레 한 켤레가 모두 공정이 달라서 일일이 수작업을 해야하는 장애인 특수화는 이문을 남기기도 어려워서 경기도 하남시 재개발 지역 비닐하우스에 자리잡은 연구소 및 공장부지도 여전히 그대로이다.
큰 돈을 벌수 있는 것도 아닌데, 5년 이상의 수련기간이 필요하고, 하루종일 코끝을 찌르는 본드냄새, 연탄냄새, 구두약 냄새를 맡아야 하는 작업의 특성상 이 일을 배워보려는 젊은 사람들이 없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
그나마 미래제화에 대한 이야기가 널리 알려짐에 따라 2005년 '건강보험공단에서 지원하는 보조기구에 장애인용 특수화(정형외과용 구두, Orthopedic shoes)가 포함돼 그로인해 지원대상에 포함되는 장애인이 2년마다 22만원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 되면서 비슷한 업체들이 몇몇 생겨났다.
"우리가 마지막이 아니길" 바라는 미래제화 구두장이 할아버지들의 소원이 조금은 이루어진 셈이다.
미래제화연구소 홈페이지 : //www.mrje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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