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스타트업 투자 경직 현상 관측…“SVB 파산은 다양한 요인 중 하나”
매일일보 = 김원빈 기자 |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이후 벤처·스타트업 투자 환경은 여전히 불확실성과 씨름하고 있다.
2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벤처·스타트업을 비롯한 시중 은행들은 지난 3월 SVB 파산의 여파를 여전히 예의주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했지만, 즉각적인 벤처·스타트업 투자 활동에는 일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내다봤다.
SVB는 미국내 실리콘밸리에 자금을 공급하던 핵심적인 은행이었다. 작년 기준 SVB는 2000억달러가 넘는 자산을 관리했다. 이는 미국 내 은행 중 16번째로 큰 규모다. 결국 SVB는 미국 역사상 파산한 은행 중 두 번째로 큰 은행으로 기록됐다.
SVB가 파산에 이르기까지는 단 이틀의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는 점도 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 3월 8일 SVB가 재무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22억달러를 조달하는 증자를 진행한다는 소식이 나온 것이 계기가 됐다. 구체적으로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SVB 파산 발표까지는 불과 45시간 가량이 소요됐다.
이에 SVB 파산 사태는 모바일 뱅킹과 같은 기술 발전으로 ‘디지털 뱅크런’이 발생, 특정 은행의 자금이 순식간에 유출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대표적 사례로 기록됐다.
SVB 파산의 원인으로 다양한 요인이 지목되고 있지만, 업계는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인한 스타트업의 가치 하락 △채권 가치 하락으로 인한 자산 손실 등의 요인이 고객들의 자금 인출로 이어졌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에 국내 벤처·스타트업계와 은행권은 SVB 파산 사태의 파장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시하고 있다. 미국·영국 등 일부 국가에서 SVB 파산을 계기로 상대적으로 재무구조가 취약한 초기 벤처·스타트업에 대한 대출 문턱을 높이는 현상이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올해 상반기 국내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역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달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발표한 ‘투자 동향 자료’에 따르면, 이 시기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건수는 584건으로 집계됐다. 투자 금액은 2조3226억원 수준이다. 작년 상반기 투자 건과 금액은 998건, 7조3199억원으로, 이 시기와 비교하면 각각 41.5%, 68.3% 급감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상반기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감소의 요인 중 하나로 SVB 파산을 꼽을 수는 있겠지만, 이같은 추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수준은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벤처캐피털(VC) 업계 관계자는 “SVB의 ‘주주’인 기업들은 당연히 파산으로 손해를 봤겠지만, 대부분의 스타트업과 VC 등 예금을 예치한 ‘고객’은 원금 보장받고 이를 돌려받았다”라면서 “SVB 파산과 벤처·스타트업계에 대한 투자금액 급감은 직접적 상관관계는 아니라고 생각된다”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흔히 이야기하는 벤처·스타트업계 투자 혹한기는 이번 SVB 파산 사태 이전부터 지속되던 추이”라면서 “SVB 파산보다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여파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조금 더 타당하다는 게 개인적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현장에서는 SVB 파산의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할지라도, 분명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서울에서 스타트업을 경영하는 A씨는 “SVB 파산이 국내에 아주 직접적인 파장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판단”이라면서도 “다만, 상황이 어떻든 투자 혹한기로 불리는 상황에서 벤처·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및 대출 의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이 추가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업계에서는 걱정이 많은 것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한편, 중소벤처기업부는 SVB 파산 사태가 일어난 직후부터 국내 스타트업계의 자금조달 경색과 벤처투자 심리 위축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 후폭풍을 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