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대통령실이 공개한 사진은 참으로 상징적이다. 사진은 윤석열 대통령이 부산의 한 시장을 방문한 모습을 포착했다. 윤 대통령 옆으로 박형준 부산시장과 함께 국내 주요 대기업집단, 즉 재벌 총수들이 도열했다. 각각 한 손에 접시, 다른 손에 젓가락을 들고 일제히 떡볶이를 집어들었다.
빈대떡, 비빔당면, 만두튀김이 순번을 기다린다. 여기까지가 우선 1차 코스고 그 다음은 돼지국밥이다. 매운 떡볶이에 속이 부대낄 만큼 기름진 음식들이다. 분명 대통령의 소통 행보, 특히 부산지역 자영업자들과의 스킨십을 강조하려는 취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대기업 총수들이 대통령 바로 뒷줄에서 떡볶이를 집어먹고 국밥집으로 졸졸 따라가는 모습은 생소하기만 하다. 과거 민주화 시대는 물론 군사독재 시절에도 희귀한 장면들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날 행보는 엑스포 사태 후속 조치다. 지난 29일 스스로 사과와 반성 의지를 드러낸 대국민 담화 연장선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시장 방문 직전 '부산 시민의 꿈과 도전' 간담회를 열었다. 엑스포 유치를 향한 부산 시민들의 성원에 감사하는 한편 가덕도 신공항, 북항 개발, 산업은행 부산 이전 등 정책을 지속한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번 엑스포 사태는 여러모로 지난 8월 잼버리 사태를 떠올린다. 일단 세계적인 망신이다. 수많은 나라 4만3000여 청소년들이 폭염과 습기, 해충의 습격, 더러운 화장실에 시달렸다. 이들은 급기야 초유의 잼버리 중단으로 전국 곳곳에 흩어졌다. 당시 이 많은 청소년들에게 숙식을 제공한 쪽도, 잼버리 본행사를 대체할 관광·체험 패키지를 제시한 쪽도 기업들이다.
그 하이라이트였던 '잼버리 K팝 콘서트'를 기억하는가. 국내 유수의 엔터테인먼트 업체들과 방송사들이 뉴진스를 필두로 19개 아이돌 팀들을 마치 갹출하듯, 서둘러 동원했다. 카카오, 하이브 같은 기업들은 아예 10억원 규모의 기념품 세트를 현물로 지원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기업들의 이런 지원이 '자발적으로'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이번 윤 대통령과 기업 총수들의 '떡볶이 회동'도 '자발적으로' 이뤄졌을까. 사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권이 엑스포 사태 관련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와 이번 부산 방문을 내년 총선과 무관치 않은 이벤트로 해석한다는 점이다.
내년 총선은 윤석열 정부 3년차 중간평가다.
대통령실과 여당 입장에서 정권심판 여론의 추이가 그 무엇보다 중대한 변수다. 특히 부산과 울산·경남은 다가올 선거 최대 격전지로 예상된다. 그런데 하필이면 '2030 부산 엑스포'가 물거품으로 사라졌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서둘러 부산 민심을 달래야 한다.
국내 대기업 총수 개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직함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다. 대기업 회장이든, 부회장이든 대표이사 CEO든 각각 수만명의 임직원과 협력업체들을 대표한다. 나아가 한국경제를 떠받치는 주력 산업의 미래를 결정한다. 이들의 해외 방문이 대통령과 총리만큼이나 국빈급 대접을 받는 이유다.
실패로 끝난 정부의 엑스포 유치 활동 예산만 무려 5700억원이다. 국내 대기업들이 투입한 인적, 물적 자원 또한 결코 적지 않다. 그럼에도 대통령실과 여당은 잼버리에 이어 다시 한 번 국내 대기업들을 본인들의 정치적 이해를 위해 동원한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이런 '성의'에 부산은 물론 전국 각지 민심이 과연 호응할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