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3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정치권은 일제히 내년 4월 총선의 시간으로 달려가고 있다. 모든 초점은 선거에 맞춰져 있다. 여당은 1973년생의 정치 경험이 전무한 검사 출신에게 당의 방향키를 맡겼고, 야당은 이래저래 계파 간 갈등이 터질 듯 말 듯 불안한 상황을 유지한 채 부글부글 끓으며 임계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여야가 총선을 향한 전력 질주 준비를 하고 있지만 정작 국민은 시큰둥하다. 국정을 책임진 여당이 리더십을 잃고 우왕좌왕 하고, 야당도 당 대표 '리스크'로 대안 정당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국민 관심과 눈길이 외면해온 지 꽤 오래됐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로 정치권에 냉소를 보낸 적은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 지난 대선 이후 역대급으로 늘어난 무당층이 이러한 상황을 방증한다.
정치가 외면 받는 이유는 '시대정신'의 실종 때문이다. 시대정신이 총선과 대선을 관통하며 그 동력으로 대한민국 정치는 앞으로 나아갔다. 더욱이 정치적 올바름을 떠나 삶의 목표를 향해 나아간 것이 이 땅을 지배하는 정신이었다.
경제 성장을 이루기 시작한 시점부터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군을 개혁하고, 경제를 개혁했으며 복지를 강화하고, 미래 성장 동력을 준비했다. 권위 의식을 타파하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집회·지위가 보장돼 갔다. 공천 헌금이 사라지고, 경선이 정착되며 정치가 투명해졌다. 모두 시대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치열한 민주화 운동과 대통령이 탄핵 당하는 위기에서도 나라가 흔들리지 않고 차분하게 제자리를 찾은 것은 '오직 국민을 위한다'는 시대정신이 굳건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의 정치는 이러한 시대정신을 잃어버리고 망각하기 시작했다. 입을 모아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행동은 내부 권력 잡기에만 혈안이 돼 있다.
한 쪽은 '대통령의 마음'의 향배에만 신경 쓰며 당을 운영하고 여기에서 벗어난 당 대표가 두 번이나 잘려 나갔다. 다른 한 쪽은 당 대표를 위한 계파들이 당 내 반대 의견을 '내부 총질'이라는 말로 민주적 의사 소통을 차단하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는 사이 치솟는 물가와 터질 듯한 가계 부채 등으로 국민은 고통받고 있다. 희망이 꺼져가고 있다. 현재를 버티고 열심히 살며 미래를 설계하는 국민을 위해 정치가 불확실성을 줄여줘야 하지만 이러한 시대정신을 놓아버렸다.
미래가 불안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국민은 현재를 포기하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국민이 정치에 무관심한 것도 더 이상 '희망'을 정치에서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치를 포기할 수 없다. 국민의 미래, 희망을 찾는 추동력은 정치에서 나올 수 밖에 없다. '정권 심판'과 '야당 심판' 자체가 시대정신이 아니다.
열심히 살아간다면 내 한 몸 뉘울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는 희망, 삶의 고통을 받더라도 지원 받을 수 있는 정책이 있다는 희망, 권력을 가졌다는 이유로 약자를 착취하면 처벌을 받는 공정이 있다는 희망, 국민을 걱정하는 정치인이 분명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다. 이제 이러한 희망을 주는 정치인이 2024년 4월, 국회에 입성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