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 "과감한 구조조정 통해 부실기업 걸러내야"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상장사 10곳 중 4곳 이상은 번 돈으로 이자도 못 갚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자금 압박’에 시달리는 취약 기업은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2020년보다 더 늘었다. 지난해 고금리와 경기 침체 속 물가가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경영환경이 악화되면서 재무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8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1674개의 상장사(코스피+코스닥) 가운데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기업은 710곳(영업적자 포함)에 달했다. 비중으로 따지면 전체의 42.4%다. 1년 전(34.3%)보다 8.1%포인트 증가한 데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2020년 3분기(39.9%)보다도 늘어난 수치다.
'이자보상배율'은 기업의 영업이익을 금융비용(이자비용)으로 나눈 것으로 기업의 채무상환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다. 이자보상배율이 1을 밑돌면 영업활동으로 번 돈으로 이자조차 갚기 어렵다는 의미다.
경영환경이 가장 악화된 업종은 건설업계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증시에 상장된 건설사 53곳 중 절반 정도(25곳)가 이자보상배율이 1을 밑돌았다. 특히 토목·건축 시공능력평가 30위권 건설사 가운데 워크아웃을 신청한 태영건설도 포함됐다. 태영건설은 지난해부터 이미 채무 부담이 컸다. 지난해 3분기까지 태영건설의 영업이익은 977억원으로 1년 전(238억원)보다 4.1배 늘었다. 흑자를 냈지만 불어난 이자비용(1271억원)을 감당하긴 부족했다.
증권가에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여파가 태영건설에서 멈추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하이투자증권은 지난 4일 보고서에서 동부건설과 신세계건설을 취약한 건설회사로 거론했다. 하이투자증권에 따르면 동부건설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단기차입금 규모가 4189억원에 이르지만, 현금성 자산은 583억원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달 말 동부건설의 단기 신용등급을 ‘A3+’에서 ‘A3’로 낮췄다.
신세계건설의 경우 현금성 자산 1468억원에 단기차입금 1700억원 규모로 당장 위험 수준은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미분양이 대거 발생하고 있는 대구 사업장이 많은 게 위험 요소로 꼽혔다. 배세호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신세계건설은 대구 수성4가 공동주택, 대구 칠성동 주상복합 등 일부 미분양 현장을 중심으로 자금 사정이 악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롯데건설을 우려하는 보고서도 나왔다. 하나증권은 이날 “도급 PF 규모가 크고, 1년 내로 돌아오는 PF가 유동성보다 크며, 양호하지 않은 지역에서의 도급 PF를 보유하는 비중이 높다는 공통점을 지닌 기업은 태영건설과 롯데건설”이라고 밝혔다.
건설업계뿐이 아니다. 일부 대기업도 고금리 대출로 이자 압박을 받고 있다. 시가총액 2조원 넘는 기업(시총 순위 150위권) 가운데 SK하이닉스를 비롯해 LG디스플레이, 롯데케미칼, 넷마블, 이마트 등이 이자보상배율이 1을 밑돌았다. 문제는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1을 밑도는 취약기업이다. 시총 2조원 넘는 기업 중에는 한진칼, 현대미포조선 등이 포함된다.
일각에선 한국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과감한 기업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정부의 과도한 기업 지원으로 생산성이 낮은 기업 퇴출은 계속 적체되고 이로 인해 새로운 기업의 진입도 막혀 국내 총요소생산성(TFP)만 떨어뜨리며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박진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지난달 1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재)한국선진화포럼이 주최한 토론회 ‘2024년 한국경제의 도전과 대응’에서 “생산성 높은 기업이 진입하고 낮은 기업은 퇴출되는 것이 총요소생산성 증가의 핵심”이라며 “총선 이후 우리 경제의 미래를 위해 강력한 기업구조조정을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총요소생산성'은 일반적인 노동 생산성 등 외에 투입되는 모든 생산요소의 생산성을 복합적으로 반영한 생산 효율성 수치를 말한다.
진입 규제와 함께 정부의 과도한 기업 지원이 기업 퇴출을 막고 있으며 한계기업인 ‘좀비기업’을 양산한다는 게 박 교수의 지적이었다. 그는 “좀비기업이 작년 말 기준으로 42%로 넘쳐나는데 정상기업에 비해 생산성은 반밖에 안 된다”며 “우리나라 총요소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있으며 이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 저가 입찰로 새로운 기업의 진입을 막는다”고 말했다.
따라서 기업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하는데 그 시기는 경기침체기 끝자락에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한계기업이 모두 드러나 공감대 형성을 이루면서도 구조조정에 수반되는 경제 전반의 고통을 경기 회복으로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또 “경기가 좋아지면 수출의 필요성을 아무도 느끼지 않기 때문에 구조조정의 명분에 수긍하지 않는다”며 “총선 때문에 지금 당장은 어렵지만 그 이후 강력한 기업구조조정을 해야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