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지원 없어 사회적 고립 상태 유발
사회 적응 실패하며 다양한 정신 질환 겪는 경우도
매일일보 = 김수현 기자 | 일반인과 장애인 사이에 회색지대로 남아 있는 ‘경계선 지능인’들이 700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되지만, 이들을 위한 제대로된 돌봄 정책이 수립되지 않아 각종 질환은 물론 범죄에 휘말리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
30일 의료계에 따르면 경계선 지능장애는 지능지수(IQ) 71~84 사이로 ‘장애정도판정기준’에 명시된 ‘지적장애’ 기준인 70 이하에 해당하지 않아 정식으로 장애로 인정받지 않는다. 그럼에도 학교 및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일상적인 대화는 가능하지만, 상대적으로 언어능력이 떨어지고 상황에 대한 이해력과 대처능력이 부족한 편이다. 교육 부문에서도 학년이 높아질수록 교과 과정을 따라가는 데 큰 어려움을 느낀다. 직장에서도 업무 속도나 정확도가 요구에 미치지 못해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이직하거나 퇴사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경계선 지능인들의 정확한 숫자는 아직 파악되지 않은 상태지만, 지능지수 정규 분포도를 감안할 경우 전체 인구 중 약 13.6%인 700만명 정도가 경계선 지능인으로 추정된다. 일각에서는 예상보다 이들의 숫자가 클 수 있다는 예측도 있다. 이스라엘에서 16~17살 남자 청소년을 조사한 결과 15.3%의 경계선 지능인으로 밝혀진 바 있다.
경계선 지능인은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어 제도적 지원을 받지 못하고, 복지 사각지대에 있어 불필요한 채무를 겪는 경우가 빈번하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 2022년 경계선 지능 청년 203명을 조사한 결과, 1주 중 최소 1~2일에서 최대 5일 이상 우울감을 느낀 비율이 54.7%로 나타났다.
일반인들의 우울증 유병률이 8~10%인 것을 감안하면 심각한 수준으로 해석된다. 또 이들 중 31.5%는 △우울증 △조울증 △조현병 △불안 강박 △수면 장애 등을 이유로 정신과 약물을 복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1년 내 자살을 생각한 비율 역시 27.6%에 달했다.
경제적 곤란을 겪는 이들도 상당했다. 경계선 지능 청년 중 중 12.4%(25명)가 채무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채무의 원인은 △벌금납부 △도박자금 마련 △차량 구입 등이었고, 몇몇은 명의도용 및 사기 등으로 빛이 생겼다고 답했다.
특히 응답자 중 6.1%은 범죄 가해자로 연루된 경험이 있다. 적절한 돌봄을 받지 않는다면 범죄의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가 될 가능성도 있다.
홍미영 부산여성가족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경계선 지능을 가진 사람 모두가 사회생활에 문제가 있거나 피해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며 “사회적 적응이 어렵고, 인식의 왜곡이나 정서장애 등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힘들 경우, 범죄의 표적이 된다거나 범죄가 발생해도 인지하지 못해서 제2, 제3의 피해가 연쇄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