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 노력에도 이스라엘 확전 시사
매일일보 = 성동규 기자 | 레바논에서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통신수단으로 쓰는 무선호출기(삐삐)에 이어 무전기(워키토키)가 폭발해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번 사건의 배후에 이스라엘이 지목됨에 따라 중동 확전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레바논 보건당국에 따르면 18일(현지시간) 레바논 동부 베카밸리와 베이루트 외곽 다히예 등지에서 헤즈볼라가 사용하는 휴대용 무전기가 잇따라 폭발해 최소 20명이 숨지고 450명이 다쳤다. 전날 숨진 헤즈볼라 대원의 장례식 행사에서도 무전기가 터졌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쪽 교외, 이스라엘 접경지인 남부, 동부 베카벨리 등 헤즈볼라 거점을 중심으로 삐삐가 17일 오후 3시 30분 연쇄 폭발해 어린이 2명을 비롯해 12명이 사망하고 약 2800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
부상자 중에는 모즈타바 아마니 주레바논 이란대사도 포함됐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그가 한쪽 눈을 실명했다고 보도했으나 이란 외교부에선 이를 부인했다.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가 지난 2월 '이스라엘의 위치 추적과 표적 공격에 활용될 수 있다'며 휴대전화를 쓰지 말라고 경고한 이후 헤즈볼라는 최근 몇 달간 통신보안을 위해 삐삐를 도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무전기도 삐삐와 비슷한 시기에 헤즈볼라가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레바논 통신부는 폭발한 무전기가 일본 회사인 아이콤(ICOM)에서 만든 단종된 모델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ICOM에선 현재 유통 중인 거의 모든 모델이 위조품이라는 입장이다.
서방의 주요 외신들은 미국 등 당국자를 인용해 이스라엘을 이번 폭발 사건의 배후로 지목했다. 제작·유통 과정에서 기기마다 배터리 옆에 소량의 폭발물과 원격 기폭장치를 심었다고 보도했다.
레바논의 한 고위 안보 소식통도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가 수개월 전 헤즈볼라에서 구입한 삐삐 5000개에 폭발물을 심었다고 주장했다.
헤즈볼라와 이란은 이번 사건을 이스라엘의 테러로 규정하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헤즈볼라는 성명을 내고 "우리는 이전과 같이 가자지구를 지원하는 작전을 계속할 것"이라며 "이는 화요일(17일) 레바논 국민을 학살한 적에 대한 가혹한 대응과는 별개다. 대가를 치르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이란 정부 대변인 파테메 모하제라니는 엑스(X·옛 트위터)에서 "시오니스트 정권(이스라엘)의 테러는 증오와 혐오를 불러일으킨다"며 "레바논 시민들을 죽고 다치게 만든 무선기기 폭발 사건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도 "레바논 시민을 표적으로 삼은 시온주의자의 테러 공격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말했다.
전면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국제사회가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레바논에서 발생한 폭발 사건과 관련해 오는 20일 긴급회의를 열기로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번 사건에 대해 입장을 내놓지 않은 채 오히려 레바논 남부의 헤즈볼라를 향한 군사작전 강도를 더 끌어올릴 것임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