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편의점 안전상비약 접근성 문제에 약사·복지부 무응답”
매일일보 = 이용 기자 | 노동·시민단체가 의대증원 문제로 의료 현장을 이탈한 의사들과 함께, 약사와 보건복지부를 향해서도 의료공백의 원인을 제공했다며 비판 목소리를 높였다.
26일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과 정치권은 대한의사협회와 비롯한 핵심 의사 단체를 향해 보건의료 종사자들의 처우 개선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가 지난 4일부터 9일까지 65곳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응급실 운영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급실(응급의료센터) 가동률이 지난 2월 전공의 집단사직 이전에 비해 떨어진 곳은 모두 33곳(50.7%)이었다. 구체적으로 50% 이하로 떨어졌다고 응답한 곳이 10곳(15.3%), 51%~80% 수준으로 떨어진 곳이 20곳(30.7%), 81% 이상 가동되고 있는 곳은 3곳(4.6%)이었다.
의사 부족과 의사 사직 등으로 응급실 의료공백이 어느 정도 발생하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발생하고 있다’고 응답한 곳은 모두 42곳(64.6%)이었다. 이 중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응답은 18곳(27.7%), ‘약간 발생하고 있다’는 응답은 24곳(36.9%)이었다.
노조 측은 의사들의 집단 사직으로 발생한 의료공백을 병원 보건의료 종사자들이 메우는 중이라며, 사태가 장기화될수록 노동환경이 갈수록 악화된다고 토로했다. 이에 보건의료산업노조와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대한영양사협회, 대한임상병리사협회, 대한작업치료사협회, 대한치과위생사협회 등은 중소영세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해 공동활동을 진행하기로 했다.
여야 정치권도 이들의 움직임에 힘을 보탰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를 보면 보건의료인력 중에서 34.3%가 활동하지 않는 실정”이라며 “의료전문직종 노동자들의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과 처우개선을 위해서 의협, 치협, 한의협, 병협은 보건의료노조가 요청한 노동기본권 교섭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시민단체는 약사과 보건당국의 무관심이 의료공백을 키운다며 있다며 비난 화살을 돌렸다. 안전상비약 시민네트워크에 따르면, 지난 7월부터 8월까지 두 달간 대한민국의 의약품 공급 및 접근성 문제에 대해 대한약사회와의 면담 요청을 했지만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했다.
해당 단체는 보건복지부가 타이레놀 2종을 포함한 기존 감기약 뿐만 아니라, 현 13개 품목에 대한 공급 불안정 및 성분의 안전성 등을 전체 재검토하고 도입 11년 간 유지돼 온 전 품목에 대한 효과성, 안전성, 사회적 타당성에 기반한 품목 교체안을 공개할 것을 요구해 왔다.
복지부를 향해선 “지난 1년 반 동안 다섯 차례나 서면과 온라인을 통한 민원 제기를 했음에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만 하고 행동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안전상비약 품목 지정에 전문성을 지닌 약사회와 직접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당국에 전달할 계획이었지만, 모두의 무관심으로 이마저도 무산됐다는 설명이다.
‘편의점 안전상비약’은 병원 및 약국이 문을 닫는 휴일에 발생할 수 있는 의료공백에 대응하기 위한 제도다. 특히 관련 제도 이용률이 높아질 수 밖에 없는 명절 연휴엔 제도 취지에 부합하는 공적 기능과 약국의 보완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게 된다.
시민네트워크는 약사회와 복지부를 향해 “의료 대란과 응급실 뺑뺑이 논란, 문 닫은 약국, 해열제 품절 등의 위협 속에서 그나마 국민이 기댈 수 있는 편의점 안전상비약까지 이렇게 방치한다는 것이 업무 태만”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세 번의 명절(지난해 추석, 올해 설, 올해 추석)이 지나는 동안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해열제 품목 4개 중 2개가 국내 생산 중단됐다. 단체는 “제도화된 편의점 안전상비약 제도가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복지부가 리더십을 가지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것을 촉구한다“고 경고했다.
노조와 대중들이 보건의료 전문직에 등을 돌리면서, 의대증원 문제가 해결된다 해도 갈등 봉합이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경기 안성의 한 약사는 “만약 내일 당장 의정 수뇌부 간 협의가 이뤄진다 해도, 정부를 향한 의사 개개인의 분노와 의료계를 향한 대중들의 싸늘한 시선을 하루아침에 없앨 수 없을 것”이라며 “정치 싸움은 지속하더라도 보건 전문직들이 국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