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죽음 내몬 불법 추심, 피해자 신변 보호 강화하고 발본색원 척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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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죽음 내몬 불법 추심, 피해자 신변 보호 강화하고 발본색원 척결해야
  •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승인 2024.11.2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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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매일일보  |  홀로 여섯 살 딸을 키우던 30대 ‘싱글맘(Single mom)’이 불법 사채업자로부터 악랄한 불법 추심에 시달려오다 지난 9월 22일 악질적 협박을 견디지 못하고 안타깝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알려지자 국민적 공분과 함께 피해자 신변 보호를 강화하고 발본색원(拔本塞源) 반드시 척결(剔抉)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는 가운데 악덕 사채업자들의 추심이 독버섯처럼 번지면서 채권 불법 추심 피해는 크게 늘고 있다. 지난 11월 24일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10월 불법 사금융 피해는 2,789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675건 대비 무려 66.5%인 1,114건이나 급증했다.

“돈을 못 갚으면 신체를 포기하겠다는 각서에 도장을 찍어라!”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The Merchant of Venice)’이나 조폭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잔혹한 대사가 대명천지(大清天) 백주(白晝)의 대낮에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이번 30대 젊은 여성을 비극적 죽음으로 몰아간 ‘협박 빚 독촉’은 엄연한 불법행위로 처벌 대상이다. 누군가의 엄마이자, 친구 또는 사랑스러운 딸이기도 했던 피해 여성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몬 끔찍하고 잔악무도(殘惡無道)했던 불법 추심의 행태라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빌린 돈은 수십만 원 정도의 소액이 대부분이었는데 말도 안 되게 많은 금액을 갚으라는 협박에 시달렸던 것으로 확인됐다. 
생전 주변인들에 보낸 문자 메시지에서 소액을 빌리고 갚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돈을 갚기로 강제로 겁박한 약속 시간보다 늦을 때마다 1분마다 10만 원씩을 더 내라는 극심한 압박에 시달렸다고 한다. 100만 원을 빌리면 일주일 만에 150만 원으로 불어났는데 연 3,000%가 넘는 천문학적인 이자를 요구한 것이다. 현행 「이자제한법 제2조 제1항의 최고이자율에 관한 규정」은 금전대차에 관한 계약상의 최고이자율은 연 20%로 정하고 있다. 연이율 수천 %대의 이자로 채무 원금 90만 원은 한 달도 안 돼 이자만 1,000만 원 넘게 불어났다. 사채업자는 피해자를 조롱하는 욕설 문자를 지인들에게 보내고, 딸아이가 다니는 유치원 주소까지 유포했을 뿐만 아니라 딸의 유치원 교사에게까지 “몸을 판다”라는 내용의 문자를 수백 통씩 보냈다. 심지어 피해자가 차용증을 들고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 현행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은 제9조(폭행ㆍ협박 등의 금지)에서 채무자 또는 관계인을 폭행ㆍ협박ㆍ체포 또는 감금하거나 그에게 위계나 위력을 사용하는 행위는 같은 법 제15조(벌칙)에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또한 정당한 사유 없이 반복적으로 또는 야간(오후 9시 이후부터 다음 날 오전 8시까지)에 채무자나 관계인을 방문함으로써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여 사생활 또는 업무의 평온을 심하게 해치는 행위, ▷정당한 사유 없이 반복적으로 또는 야간에 전화하는 등 말ㆍ글ㆍ음향ㆍ영상 또는 물건을 채무자나 관계인에게 도달하게 함으로써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여 사생활 또는 업무의 평온을 심하게 해치는 행위, ▷채무자 외의 사람(보증인 포함)에게 채무에 관한 거짓 사실을 알리는 행위, ▷채무자 또는 관계인에게 금전의 차용이나 그 밖의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채무의 변제자금을 마련할 것을 강요함으로써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여 사생활 또는 업무의 평온을 심하게 해치는 행위, ▷채무를 변제할 법률상 의무가 없는 채무자 외의 사람에게 채무자를 대신하여 채무를 변제할 것을 요구함으로써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여 사생활 또는 업무의 평온을 심하게 해치는 행위, ▷채무자의 직장이나 거주지 등 채무자의 사생활 또는 업무와 관련된 장소에서 다수인이 모여 있는 가운데 채무자 외의 사람에게 채무자의 채무 금액, 채무불이행 기간 등 채무에 관한 사항을 공연히 알리는 행위 등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이들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하지만 실형을 선고받는 비율은 20%도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인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채권추심법 위반 사건의 1심 판결 78건 가운데 징역형 실형 선고는 13건(16.7%)에 그쳤다. 징역형의 집행유예는 18건(23%), 벌금형은 30건(38.5%), 벌금형의 집행유예 5건(6.4%), 무죄 6건(7.7%), 기타 6건(7.7%) 등이었다. 올해도 1월부터 10월까지 채권추심법 위반 사건 1심 판결 91건 중 징역형 실형이 선고된 건수는 18건(19.8%)에 그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밖에도 징역형 집행유예는 18건(19.8%), 벌금형은 47건(51.6%), 벌금형 집행유예는 3건(3.3%)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불법 사채업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부실한 미온적 대응이 결국 끔찍한 비극을 초래한 것으로 보여 안타깝고 답답할 뿐이다. 문제는 불법 사금융 피해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1월 2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산하 ‘불법사금융피해신고센터’에 접수된 상담·신고 현황은 2020년 7,351건에서 지난해 1만 2,884건으로 무려 75%나 늘었으며 올해(1~10월)에도 1만 1,875건으로 62% 가까이 늘었다.  이렇게 늘어난 피해자의 대다수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손쉽게’ 발을 들였다.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전체 불법사금융 신청자 90%가 포털 검색을 통해, 7%가 SNS를 통해 대출받고 있다. 최근 불법 대출 트렌드는 ‘비대면’이 대부분이다. 애플리케이션이나 웹사이트 광고를 보고 대출을 문의하면, 업체는 인터넷주소(URL)를 보내 채팅방 대화를 유도하고 이에 응하면 담보 대신 등본·지인 연락처 등을 받고, 신용도를 올려야 한다며 특정 금액을 빌려준 뒤 곧바로 상환을 요구한다. 일주일 간격으로 30만 원 대출 50만 원 상환, 70만 원 대출 120만 원 상환 등을 반복하는 식이다. 이 과정이 몇 차례 이어지면, 빚은 순식간에 불어나 법정 이자율 20%를 초과해 최대 연리 수만 %까지 이율이 치솟는다. 게다가 불법 사채 추심 방법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성매매 업소에서 일한 적 있다”라거나 “낙태를 위해 돈을 빌렸다”라는 등 “확인되지 않은 조작된 허위사실들을 유포하겠다”라고 압박하고, 피해자가 사전에 받은 정보를 “퍼트리겠다”라며 협박하기도 한다. 불법 추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성 착취로 발전하기도 한다. 경찰이 최근 검거한 불법 대부업 조직 총책 등 6명은 피해자 2,400여 명에게 약 1만 507퍼센트의 연이율을 요구하며 돈을 빌려줬는데, 이들은 담보물 명목으로 피해자에게 나체 사진과 영상을 찍어 보내라고 요구했다. 이자를 제때 납입하지 못하자 사진과 영상을 성인 사이트에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뿐만 아니라 개인정보를 넘어 심지어 ‘군 기밀’까지 담보물로 취급한 사례도 나타나고 있어 충격을 주기도 했다. 지난달 구속·기소된 한 사채업자들은 군 간부 10여 명에게 돈을 빌려주며 3급 군사 비밀인 ‘암구호’까지 담보로 확보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이들은 “이자를 내지 않으면 암구호 유출을 부대에 알리겠다”라며 협박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러한 불법 추심의 잔혹상은 기시감(旣視感)을 넘어 수년째 사후약방문 데자뷔(Dejavu)를 보는 느낌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불법 사금융 민생현장 간담회에서도 “약자의 피를 빠는 악질적 범죄”라며 분노했다. 앞서 정부는 2022년 8월 불법 사채업자의 빚 독촉을 견디지 못해 함께 목숨을 끊은 ‘수원 세 모녀 사건’을 계기로 사회적 공분이 일자 ‘불법 사금융 척결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킨 바 있다. 정부의 거듭된 엄포에도 별반 효과는 신통치 않아 보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불법 대부’ 관련 피해 신고 1만 2,884건 중에서 고금리 수취로 인한 피해는 전체 피해 신고 건수의 26.9%(3,472건)를 차지했다. 또 한국대부금융협회는 불법 사채의 연 환산 평균 이자율은 무려 414%에 달한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지난 7월 연 최고 3만 6,500%의 살인적인 이자를 뜯어낸 미등록 불법 대부업자 일당이 경기도 특별사법경찰단에 의해 검거되기도 했다. 고금리·고물가로 서민 경제가 어려워진 데다 대출 문턱이 높아지면서 취약계층이 어쩔 수 없이 계속 불법 사금융으로 밀려나고 있다.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리지 못해 제도권 밖으로 밀려났을 가능성이 크다. 저소득·저신용 취약계층이 제1금융권인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여서다. 그나마 희망을 걸어볼 만한 곳이 저축은행·카드·캐피털사 등 제2금융권인데, 여기서도 대출이 막히면 손을 내밀 곳은 대부업권, 불법 사금융뿐이다. 금융 당국은 가계대출 ‘풍선 효과’가 현실화하자 제2금융권 대출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문제는 서민 급전 창구인 제2금융권 신용대출과 카드론, 현금서비스를 받는 것마저 쉽지 않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제도권 금융의 ‘마지노선’인 대부업권에서 돈을 빌리는 것마저도 대부업체들이 대출을 줄이고 있어서 녹록지 않다.  서민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대부업체에서 불법 사금융으로 떠밀린 저신용자만 최대 9만 1,000명으로 추산된다. 제도권 최후의 창구인 대부업체가 사실상 대출문을 닫아 버려서다. 법정 최고금리가 2021년 7월부터 20%로 묶인 상황에서 고금리 장기화로 조달 금리가 높아지고, 연체율은 치솟아 사업성이 크게 악화한 탓이다. 대부업체 신용대출 잔액은 2022년 7월 10조 3,786억 원에서 올해 9월 8조 594억 원으로 22.3% 급감했다. 같은 기간 신규 신용대출을 내주는 대부업체도 64곳에서 37곳으로 42.2%나 대폭 쪼그라들었다. 취약계층은 불가피하게 불법 사채업자를 찾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아닐 수 없다. 경찰청은 2022년 11월부터 불법 사금융 특별단속을 추진하며 불법 대부업 조직을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2022년 불법 사금융 조직 2,073명을 검거하고 범죄수익 43억 원을 환수했다. 2023년에는 2,195명을 검거하고 범죄수익 62억 원을 환수했다. 올해도 10월까지 3,000명을 검거하고 범죄수익 169억 원을 환수했다. 형사 처벌을 감수하면서도 불법 사채업을 하려는 사업자가 여전히 많다는 방증(傍證)이다. 이에 따라 경찰은 2022년 시작한 불법 채권추심 특별단속을 내년 10월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다행이지만 단속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경찰은 피해 금액을 떠나서 신고 접수 즉시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 이와 함께 민사적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전문 수사 인력을 확충해 단속을 강화하고 양형기준을 세분화해 징역형 비율 상향 등 처벌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자제한법」상 최고이자율을 초과하는 약정을 하거나 이를 수수하는 경우는 해당 약정 자체를 원천무효로 하고, 원금과 이자를 전부 주지 않아도 되는 방법으로 불법 사채업자의 경제적 유인(誘引)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민사적 제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피해자 신변 보호를 대폭 강화해 억울한 피해가 없도록 해야만 한다. 갈수록 지능화·고도화되는 불법 사채시장은 흡사 무법천지다. 미등록 대부업체는 범죄단체로 규정해 강력히 처벌하고, 통제된 범위 안에서 적법하게 대부업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더불어 추심 과정에서 발생하는 협박, 스토킹, 야간 방문, 전화 등 명백한 불법행위에 대해 철저하고 강력히 단속해 근절(根絶)해야만 한다. 사채업자들이 서민의 생존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비인륜적 악질 범죄를 발본색원(拔本塞源) 뿌리부터 송두리째 뽑아내 서둘러 척결(剔抉)해야만 한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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