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근로자 이미 최저임금 이상 받고 있어
[매일일보 박동준 기자] 정부가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할 방침을 세우고 있는 가운데 최저임금 인상만으로는 내수진작을 유도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 비중이 14%에 불과해 이미 대다수 근로자들이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9일 정치권과 기재부 등에 따르면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4일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주최로 열린 조찬강연에서 “적정 수준의 임금 인상이 일어나지 않고는 내수가 살아날 수 없다”며 “현 정부 들어 최저임금 인상률을 연간 7%대로 올렸으며, 올해도 최저임금을 빠른 속도로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정치권도 최 부총리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에서 “최저임금 인상으로 가계소득이 늘면 소비가 늘고 내수가 살아나 결국 혜택이 기업에 돌아간다”며 “임금 인상을 수용해 장기 침체에 빠진 우리 경제를 살리는 한편 경제성장 과실을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나누는 포용적 성장에 동참해달라”고 호소했다.문 대표는 “재계도 반대만 할 게 아니라 시간당 5580원, 한달 110여만원의 임금으로 어떻게 4인 가족이 살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저소득층일수록 빚에 허덕이며 살았다. 평균소비성향(처분가능소득 대비 소비지출)이 소득하위 20% 계층은 104.1, 상위 20% 계층은 61.6%로 나타났다.평균소비성향이 100을 넘긴다는 것은 저소득층일수록 벌어들이는 돈보다 쓰는 돈이 더 많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적자가구 비율은 상위 20% 계층이 7.6%에 그친 반면, 하위 20% 계층은 46.5%나 됐다.박원석 정의당 의원은 “저소득층일수록 최저임금 인상의 체감효과가 클 수밖에 없다”인상된 최저소득은 결국 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층의 소비로 이어져 쉽사리 내수를 진작시킬 수 있다는 뜻도 된다”고 설명했다.하지만 일각에서는 최저임금 상향만으로는 내수진작을 유도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한다.
안기태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최저임금 인상의 혜택을 받을 계층은 소득하위 계층으로, 소비성향이 중산층에 비해 높기 때문에 정부가 의도한 대로 소비진작 효과가 일부 나타날 수 있다”면서도 “다만 최저임금인상만으로 내수진작을 유도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밝혔다.최저임금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최저임금이 적용되는 근로자 가운데 이 제도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의 비율은 14.5%에 불과하다. 대다수 근로자들은 이미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지급받고 있다는 말이다.안 연구원은 “오히려 최저임금 인상이 ‘저소득층 생활 향상’이라는 취지와 상반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며 “최저임금 제도 내에서 취업하지 못한 비숙련 노동자는 소득이 감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그는 “지난 2012~2014년 임금 인상률은 명목 경제성장률을 웃돌았지만 소득분배 악화 추세를 개선으로 전환시킬 정도의 효과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오히려 그는 최저임금 인상보다 근로장려세제 확대가 소득분배 개선에 좀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이 뿐만 아니라 현재 저소득층의 소비 패턴을 감안하면 최저임금 인상이 소비로 직결되지 못할 가능성도 크다.통계청의 ‘2014년 가계동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소득 하위 20%의(소득 1분위)의 슈바베 지수는 17.9%로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15.6%)에 비해 2.4%포인트나 상승했다. 이들은 한 달 동안 소비하는 103만원 중 18만5000원을 주거비로 사용했다.같은 기간 전체 가구 평균이 9.7%에서 10.4%로 상승한 것과 비교하면, 저소득층의 주거비 부담이 훨씬 크고, 빠르게 늘어났다.슈바베 지수는 가계의 전체 소비지출 중 월세와 수도세, 난방비, 관리비 등 주거 관련 지출의 비중을 뜻한다. 엥겔지수(식료품비 지출의 비중)와 함께 ‘삶의 질’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다.저소득층의 주거비 상승은 도시에서 저가 전세를 구하기 어려워지는 현상과 관련이 있다.국토연구원에 따르면 전국의 전세 주택 중 보증금 1억원 이하의 비중이 2011년 43%에서 지난해 33%로 급감했다. 연령대별로는 가구주가 60대 이상 노인인 가구의 슈바베 지수가 14.4%로 가장 높았다. 2008년 12.7%에서 1.7%포인트나 높아졌다. 50대 이하 연령대는 9%, 10%대에서 소폭 상승하는 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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