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이상준 기자] “대통령이 국정의 모든 일에 다 개입하지는 못한다. 대통령은 모든 상황을 종합 판단해 할 것으로 생각한다.”
지난 22일 가까스로 입각한 황교안 신임 국무총리가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메르스 사태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이처럼 발언했다.
한 마디로 국민에게 직접 책임을 져야 하는 정부로서는 사태를 한층 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정부의 태도로 볼 때 메르스 사태에 합당한 책임감을 전혀 느끼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뿐이다.
어떻게든 정부의 입장에서 그동안의 사태 수습에 대해 긍정적 행동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그동안 황 국무총리와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회 등에서 몇 차례 사과성 발언에 불과한 것이 사실이다.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서 황 총리는 “사태 종결 뒤에 잘못된 점을 면밀하고 철저하게 조사하겠다”라고 말했고 문 장관은 “어떤 경우에도 책임을 회피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을 뿐이다.
진심으로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는 아직 없는 실정이다.
물론 메르스 확산을 막지 못한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밝혀져야 할 것들이 많지만 정부 책임이 누구보다 크다는 데 국민 대부분이 동의한다. 정부는 메르스에 사전 대비를 하지 못했고 최초 환자 발생 때 신속한 대응에 실패했으며 컨트롤타워도 명확히 내세우지 못했다. 국민들 대다수가 이번 메르스 공포로 인명 피해가 생기고 생활 불편뿐 만 아니라 우리 경제가 큰 손실을 봤고, 한국의 대외 이미지에도 나쁜 영향을 미쳤다.
이에 국정 최고 책임자가 책임을 통감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일 뿐 아니라 정부에 대한 불신을 씻고 재난 극복의 동력을 강화할 수 있는 수습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은 얼마 전 송재훈 삼성병원장을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있는 충북 오송으로 불러 질책하고 강력한 대처를 주문했다. 박 대통령이 누군가의 책임을 추궁할 때는 자신의 책임도 솔직하게 인정해야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 버린 것이다.
그런데 학창시절 자신이 맡고 있는 반에 관심도 없는 무능한 선생님이 어느 날 우연히 자신의 반이 시끄러운 모습을 보고 왜 이렇게 시끄러운지 원인은 알아보지 않고 대처도 하지 않은 채 반장에게 모든 것을 책임지라고 벌을 서게 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3일 아버지 이건희 회장을 잇는 삼성그룹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로서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사과문을 발표하고 지원대책을 내놓았다. 이 부회장은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감염과 확산을 막지 못해 국민 여러분께 너무 큰 고통과 걱정을 끼쳐드렸다”며 “사태가 수습되는 대로 병원을 대대적으로 혁신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감염 질환에 대한 백신과 치료제 개발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메르스 사태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와중에서도 삼성 쪽이 최고 책임자의 직접 사과와 혁신 약속을 내놓은 것은 국민의 불신과 지탄이 그만큼 크게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가 느끼기엔 이 부회장의 사과 기자회견은 비교적 진지하고 솔직했다고 판단된다.
아마도 삼성병원은 진심으로 병원 차원의 공익성을 높이기 위한 강도 높은 개혁을 실행해 나갈 것이다. 말로만 그치지 않고 전면 개혁 의지를 갖고 지속적 투자와 그간 쌓아온 명성에 누가 되질 않도록 하리라 믿는다.
이는 정부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얘기다. 이에 메르스에 늑장 대응한 박 대통령이 사과의 적절한 시기마저 놓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