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중 유일하게 병풍석이 생략된 삼연릉(三連陵) 형식
[매일일보 김종혁 기자] 경릉은 조선 24대 헌종성황제와 첫 번째 왕비 효현성황후 김씨, 두 번째 왕비 효정성황후 홍씨의 능이다.경릉은 세 개의 봉분을 나란히 조성한 삼연릉(三連陵)의 형태로 조선왕릉 중 유일하다.정자각 앞쪽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이 헌종, 가운데가 효현성황후, 오른쪽이 효정성황후의 능이다.세 봉분은 모두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을 둘렀으며, 난간석이 서로 연결돼 있다.각 봉분 앞에는 혼유석을 따로 설치했다.
능침 아래에는 정자각, 비각, 홍살문, 판위 등이 배치됐으며, 비각에는 한 개의 표석이 있다. 표석은 대한제국 선포 후 황제 추존으로 바꾼 표석으로, 전면에는 ‘대한 헌종성황제 경릉 효현성황후 부좌 효정성황후 부좌’라 써있다.
능의 역사
처음 경릉자리는 선조의 목릉(穆陵)이 있던 자리였는데, 1630년(인조 8년)에 목릉에 물길이 있고 풍수상 불길하다는 심명세의 상소로 목릉천장을 확정하고 구릉을 파고 현궁을 열어 보니 물기가 없어 그의 불길론은 해소됐다.이 후 헌종의 첫 번째 왕비 효현성황후 김씨가 1843년(헌종 9년)에 세상을 떠나, 현재의 자리에 처음 능을 조성했다.6년 뒤인 1849년에 헌종이 세상을 떠나자, 13곳의 택지를 간심한 끝에 ‘십전대길지(十全大吉地)’의 명당이라고 주장한 효현성황후의 경릉 오른쪽에 능을 조성했다.대한제국 선포 후 1904년(광무 8년)에 헌종의 두 번째 왕비 효정성황후 홍씨가 세상을 떠나 현재의 자리에 능을 조성했다.헌종성황제(憲宗成皇帝) 이야기
헌종(1827~1849)은 추존 문조와 신정황후 조씨의 아들로 1827년(순조 27년)에 창경궁 경춘전에서 태어났다.1830년(순조 30년)에 왕세손으로 책봉되고, 1834년에 순조가 승하하자 왕위에 올랐다.8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 할머니인 순원황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실시했다.그 후 1849년(헌종 15년)에 창덕궁 중희당에서 23세로 세상을 떠났다. 1908년(융희 2년)에 헌종성황제로 추존됐다.
1837년(헌종 3년)에 효현성황후를 왕비로 맞이했으나, 6년 뒤에 소생 없이 세상을 떠났다.
효현성황후(孝顯成皇后) 이야기
헌종의 첫 번째 왕비 효현황후 김씨(1828~1843)는 본관이 안동인 영흥부원군 김조근과 한성부부인 이씨의 딸로 1828년(순조 28년)에 안국방(현 서울 안국동) 외가사저에서 태어났다. 1837년(헌종 3년)에 왕비로 책봉됐으나 헌종 사이에 후사를 낳지 못했다.1843년(헌종 9년)에 창덕궁 대조전에서 16세로 세상을 떠났다. 1908년(융희 2년)에 효현성황후로 추존됐다.최초의 태후, 효정성황후(孝定成皇后) 이야기
헌종의 두 번째 왕비 효정황후 홍씨(1831~1904)는 본관이 남양인 익풍부원군 홍재룡과 연창부부인 안씨의 딸로 1831년(순조 31년)에 함열현(현 전북 익산) 관사에서 태어났다.1843년에 헌종의 첫 번째 왕비가 승하하자 1년 뒤에 헌종의 두 번째 왕비로 책봉됐다. 헌종이 승하하고 철종이 즉위하자 명헌대비가 되고, 1859년(철종 10년)에 왕대비가 됐다.이 후 왕실의 어른으로 지내다가 1897년(광무 1년)에 대한제국이 선포되면서 최초의 태후가 됐다. 헌종 사이에 소생을 낳지 못했으며, 1904년(광무 7년) 양력 1월 2일에 경운궁 수인당에서 73세로 세상을 떠났다. 1908년(융희 2년)에 효정성황후로 추존됐다. <사진,자료출처=문화재청,조선왕릉관리소,공공누리집>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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