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백제 왕흥사, 정유년에 창왕을 다시 만나다’展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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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백제 왕흥사, 정유년에 창왕을 다시 만나다’展 개최
  • 김종혁 기자
  • 승인 2017.07.13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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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김종혁 기자]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부여군, 국립부여박물관과 공동으로 특별전 「백제 왕흥사, 정유년에 창왕을 다시 만나다」를 7월 18일부터 10월 9일까지 국립부여박물관 기획전시설에서 개최한다.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신리에 자리한 백제 왕흥사는 577년, 정유년(丁酉年)에 건립된 사찰로 일제강점기에 왕흥(王興)명 기와가 수습돼 이곳이 백제의 왕흥사터로 밝혀졌고, 2001년 사적 제427호로 지정됐다.
올해는 왕흥사지 창건 1440주년이 되는 해이자 왕흥사가 건립되던 정유년으로 이번 특별전은 이를 기념하고 백제 왕실 사찰인 왕흥사의 위상을 재조명하고자 기획됐다.총 4부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왕흥사지 사리기(사리를 담는 그릇)를 포함한 9,800여 점의 유물이 전시될 뿐만 아니라 발굴 당시의 숨겨진 이야기와 유물 복원작업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가 마련돼 있다.1부 ‘위덕왕, 왕흥사를 세우다’에서는 왕흥사 소개와 특수 기와, 명문 기와를 살펴보고 왕흥사지 가마터 등을 소개한다.2부 ‘위덕왕, 사리기에 마음을 새기다’에서는 출토유물인 사리기와 사리장엄구 등을 통해 인간 위덕왕의 고난과 역경, 업적 등을 살펴본다.3부 ‘왕흥사, 고려 시대로 이어지다’에서는 고려 시대 왕흥사의 운영 과정을 이해해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4부 ‘왕흥사의 역사를 새롭게 쓰다’는 2000년부터 시작된 왕흥사지 발굴조사와 연구 성과를 소개하고 사리기와 치미의 복원 연구 과정을 조명한다.
사리기 사진 <문화재청>
특히, 전시에서 주목되는 유물은 사리기와 대형 치미다. 2007년에 발굴된 왕흥사지 사리기 일괄(보물 제1767호)은 청동으로 만든 원통모양의 상자(盒) 속에 작은 은제 항아리(壺)를 담고, 그 안에 다시 금제 병(甁)을 넣어 삼중으로 사리를 봉안한 유물이다.
가장 바깥에 있던 청동 상자의 단단한 표면에는 29자를 정성스럽게 새겨 창건연대와 목적 등을 기록하였다. 이를 통해 위덕왕(창왕, 재위 554~598년)이 죽은 아들(왕자)을 위해 577년에 왕흥사를 건립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삼국사기'에는 왕이 배를 타고 백마강을 건너 왕흥사를 방문해 향을 피웠다는 기록도 찾아 볼 수 있어 더욱 흥미롭다.
용마루 끝에 장식하는 기와'치미'<사진 문화재청제공>
치미는 지붕의 용마루 끝에 설치하는 장식용 기와로 품격이 높은 대형 건물에 주로 설치되던 건축 재료이다. 왕흥사지에서 출토된 치미는 높이가 123cm이며,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마름모꼴의 꽃장식인 연화문(蓮花紋), 구름문, 초화문(草花紋) 등의 화려한 문양, 전체적으로 꼬리 부분이 하늘로 향해 날카롭게 표현해 마치 새가 꼬리를 세워 비상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는 특징이 있다.여기서 단순할 수도 있는 지붕장식을 화려함과 위엄을 갖춘 예술품으로 승화시킨 백제 최고 수준의 장인 정신을 엿볼 수 있다.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파손된 채 수습된 118개의 조각을 보존 처리하고, 3차원 입체영상(3D) 기술을 활용해 완성된 형태로 복원했다.이번 전시에서는 치미 복원 관련 영상과 사진 자료 등을 함께 볼 수 있다.치미(鴟尾)는 동아시아 전통건축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지붕의 장식기와로, 건물의 용마루 양 끝에 올려 건물의 위엄을 높이고, 귀신을 쫓는 역할을 하는 부재를 말한다.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2000년부터 15차례에 걸쳐 왕흥사터를 발굴했다. 이번 특별전을 통해 백제 왕흥사를 폭넓게 이해하는 기회를 마련하고, 앞으로도 백제문화의 우수성이 잘 알려지도록 시민사회 및 유관기관들과 협력해 나갈 계획이다.


좌우명 : 아무리 얇게 저며도 양면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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