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무상급식 못 막으면 대한민국 무너진다” 주장…‘구국투사’ 변신?
[매일일보=이한듬 기자] 지난 10월, 애꿎은 낙지에 중금속 위험을 주장하다 관련 기관에 망신을 당하면서도 끝내 고집을 꺾지 않아 어민들의 가슴에 큰 대못을 박았던 오세훈 서울시장이 이번엔 초등학교 학생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것으로 보수층의 지지를 모아보려하다가 빈축만 사고 있다.
서울시 초등학생들에 대한 무상급식을 전면적으로 시행하는 방안을 두고 시의회 다수당인 민주당과 그간 줄곧 마찰을 빚어오던 오 시장은 지난 1일 시의회가 해당 조례안을 의결시킨 것에 대해 크게 반발하며 파업에 들어가는 초강수를 던졌다.왜 그러냐는 질문에 “무상급식을 막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이 무너지기 때문”이란다. 대한민국의 붕괴를 막기 위해 오세훈 시장은 원대한 사명감을 앞세운 채 칼을 빼들고 스스로 구국투사(?)의 길을 자처했다.오 시장의 이러한 행보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차기 대권경쟁구도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지속 독주 가운데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보수강성’ 이미지를 선점, 대안으로 부상함에 따라 점차 사라져가는 자신의 정치적 존재감을 역전시켜보기 위한 나름의 몸부림이라는 해석이 주를 이루고 있다.보수층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거대담론을 화두로 제시하면서 동시에 ‘거대야당의 탄압을 받는 힘없는 시장’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동정여론을 좀 모아보려는 것 아니냐는 것인데, 그의 어깨엔 힘이 너무 들어가 있고 자신의 정책 자체에서 드러나는 자기모순으로 스텝마저 꼬여들어 측은함만 자아내고 있다는 반응이다.아이들에게 ‘공짜 밥’을 먹이자는 게 “망국적 포퓰리즘”이라면서
정작 자신의 핵심공약인 ‘공짜 준비물’정책은 강행하는 자기모순
시의회 출석 전면 거부하면서 곽노현 교육감과 1대1 TV토론 요구
야당 “토론은 시의회에서 하세요…시장직하기 싫으면 사퇴하시던가”
갈등의 시작…‘혹시나’가 ‘역시나’로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민선5기 출범이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8월 ‘서울광장 조례안’을 두고 오 시장과 시의회 민주당과 정면충돌하는 일이 발생했다.서울광장에서 집회·시위를 허용하는 내용의 광장조례가 시의회에서 통과되자 오 시장은 즉시 재의를 요구했고, 시의회 민주당 측은 다시 조례안을 재의결시켰다. 이에 오 시장은 조례 공포를 거부했으나 시의회는 보란 듯이 허광태 시의회 의장 직권으로 조례안을 공포했다.결국 오 시장은 9월말 대법원에 ‘서울광장 조례’ 무효 소송을 제기했고, 현재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이다. 법원의 결정이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지는 쉽게 예측할 수는 없으나 양측 모두 법원의 판결과는 상관없이 끝까지 각자의 의견을 관철할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이 와중에 두 번째 충돌이 벌어졌다. 서울시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무상급식’을 전면 시행하는 방침을 두고 의견이 또 다시 상충된 것이다.시의회 민주당 측은 전면적인 무상급식을 주장하는 반면, 오 시장은 밥값을 낼만한 능력이 충분한 가정에도 무상급식을 지원하는 것은 올바른 복지가 아니라며 이에 대한 반대 입장을 유지해 왔다.결국 시의회는 지난 1일 제227회 정례회 제4차 본회의를 열어 ‘친환경 무상급식 지원에 관한 조례’을 의결했고, 이에 반발한 오 시장은 갑자기 휴가를 내고 2일부터 시의회 시정질문 불참을 선언했다.“무상급식은 망국적 복지포퓰리즘”“무상급식은 망국적 복지포퓰리즘” 시정질문에 불참한 오세훈 시장은 3일 서울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무상급식은 망국적 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 복지선전전의 전형”이라며 시의회가 의결한 ‘무상급식 조례안’을 기필코 저지할 것이라는 의사를 표명했다.오 시장은 “무상급식을 시행하면 서울시는 부유층 학부모가 부담하던 급식비용까지 떠안게 돼, 다른 투자를 줄이면서 매년 몸집을 늘려가는 예산을 감당해야 한다”며 “무상급식이야말로 서민정당을 자처하는 민주당에게 결코 어울리지 않는 ‘부자 무상급식’이자 어려운 아이들에게 가야할 교육·복지예산을 부자에게 주는 ‘불평등 무상급식’이다”라고 주장했다.그는 또 “내가 제동을 걸지 않으면 시의회는 계속 인기영합주의 정책을 내세울 것이고, 재의요구와 대법원 제소가 계속되는 악순환을 막을 길이 없다”며 “무상급식 조례안이 철회되지 않는 한 시 의회와 시정 협의는 없다”고 못 박았다.전면전 선포, 대권입지 강화 전략?
이처럼 오 시장의 투쟁적인 행보 나선데 대해 일각에서는 그가 다른 속내가 있기 때문에 강수를 놓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던지고 있다.시정질문 참석을 거부하면서까지 대화와 타협을 피해온 그가 “무상급식은 망국적 포퓰리즘”, “막지 못하면 대한민국이 무너진다”라는 등 강경한 표현을 써가며 전면전을 선포하고 일방행보를 달리더니, 급기야 ‘공개토론’을 제안하는 것은 지나친 뒷북이고 순서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일반적으로 ‘공개토론’이라는 대화와 논의, 타협의 과정을 통해 양측의 의견을 확인한 뒤, 끝내 접점을 찾지 못할 때 마지막 수단으로 택하는 것이 정면승부나 강행돌파여야 하는데 그 순서가 반대로 됐다는 것.특히 ‘토론’은 시의회에 출석해서도 충분히 가능한 것인데, 여전히 출석을 거부한 채 언론을 통해 토론제안 등을 이야기하는 것을 두고 시의회 측에서는 그가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를 더욱 견고히 하기 위해 정략적인 수단을 택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한나라당에서 박근혜 전 대표, 김문수 경기지사와 함께 차기 대권주자로서 거론되고 있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자신에 대한 당내 입지를 지금보다 강화하기 위해서는 시의회 민주당 측에 쉽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기 때문에, 반대할 수 있는 데까지는 다 해봤다는 액션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또한 시의회 측은 오 시장의 주장대로 전면적인 무상급식이 포퓰리즘이라면, 그가 주장하고 있는 학생들의 준비물을 시가 모두 부담하는 ‘준비물 없는 학교’ 역시 포퓰리즘에 불과하다며 그의 노림수는 대권후보로서의 입지를 굳히는 데 있는 것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오렌지족인줄 알았더니 목수”“오렌지족인줄 알았더니 목수” 한편 오 시장의 전면전 선포에 야당은 일제히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민주당 박기춘 의원은 “오세훈 서울시장하면 떠오르는 게 ‘오렌지족, 귀공자’라고 말하는 분들이 많지만 요새는 목수출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다”며 “어린이들 가슴에 대못을 박는 짓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박 의원은 이어 “친환경 무상급식을 부자급식이라고 매도하며 서울시 의회의 조례안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며 “무상급식 지원 예산 700억원이 복지 포퓰리즘이라면, 예상비용이 조 단위인 한강르네상스라든지, 또는 남산르네상스 개발계발비 등이야 말로 포퓰리즘이 아니고 무엇이겠나”라고 지적했다.특히 박 의원은 “내후년 총선과 대선에서 더 과격한 포퓰리즘 공약이 등장할 것이라며 경계하는 것은 마치 자신이 대통령 후보에 나서는 후보발언이 아닐 수 없다”며 “오세훈 시장이 경계할 것은 서울 시정을 책임지고 있는 입장에서 서울시민의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고 꼬집었다.같은 당 차영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무상급식은 서울시민과 서울시의회가 이미 결정한 것이고 오세훈이라는 개인 한 사람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서 “오 시장은 줄행랑치지 말고 연극 그만하라”고 비판했다.차 대변인은 이어 “눈물 젖은 밥을 먹어본 적이 없을 테고 돈이 없어서 도시락을 싸가지 못한 적이 오세훈 시장은 없을 것”이라며 “아이들 점심 먹이는데 뭐 그것을 가지고 서울시장의 정치적 생명까지 걸어야 하겠는가. 조속히 우리 아이들에게 무상급식을 먹일 수 있도록 서울시장의 역할로 되돌아오시기 바란다”라고 촉구했다.민주노동당 우위영 대변인 역시 오 시장의 전면전 선포를 “명백히 대권 행보를 염두에 두고 무책임하게 내뱉는, 다분히 정략적 언사”로 규정하면서 “무리한 인기몰이에 싸구려 언론플레이의 전형”이라고 성토했다.
우위영 대변인은 “초, 중, 고등학생에 더해 특수학교까지 전체 무상급식에 소요되는 예산은 3조 가량으로 이명박 정부가 강행하고 있는 4대강 사업 예산의 7분의 1만 있어도 해결된다”며 “오세훈 시장이 진정 나랏꼴을 걱정한다면, 4대강 예산을 포기하라고 해야 맞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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