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간 비밀접촉 ‘왜’ 지금 시점에서 공개했나…정상회담 사전분위기 조성?
[138호 정치]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로 대통령 측근인 안희정씨가 지난해 10월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리호남 참사와 비밀리에 접촉했다는 청와대의 시인과 관련, 정치권이 현 대북정책을 강력히 비판하며 정부를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비공식 접촉’을 부인해왔었다.
일단 노 대통령이 왜 안희정씨 등 ‘비선조직’ 즉 ‘비공식라인’을 통해 대북 접촉을 지시했는지가 가장 큰 의문인데, 정치권은 이를 두고 대북정책은 국민적 공감대와 투명성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비선조직’을 통한 대북정책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특히 청와대가 지금에 와서 남북간 비밀접촉 사실을 공개한 배경에도 의문부호를 던지면서, 혹시라도 조만간에 성사될 남북정상회담의 사전 분위기 조성 목적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보내고 있다.
29일 청와대와 정치권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9일 북한의 핵실험 이후 ‘북한의 생각이 무엇인지 확인해보라’고 지시했고 이에 따라 안씨와 열린우리당 이화영 의원(동북아평화위원)은 같은 달 20일 베이징에서 리호남 참사를 만난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당시 양측의 접촉과 관련, 한나라당은 “남북정상회담 논의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고, 이호철 청와대 국정실장은 “핵실험 직후라 그럴 처지가 아니었고 북측은 쌀과 비료문제만 거론했다”는 입장으로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화영 의원도 “핵실험 이전부터 북측의 대화요구가 있었고, 북측은 줄곧 안씨와의 대화를 요구했다”며 이른바 ‘新북풍’의 미스테리로 꼽히는 ‘남북정상회담 막후추진설’과는 무관함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는 여러 형태의 대화가 필요하다”며 “안희정씨의 북측 인사 접촉에 대한 그동안의 경위를 알아본 결과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해, 정치권의 네거티브 공세에 오히려 문제가 있다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남북정상회담과 ‘無관’ VS ‘有관’ 충돌그러나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한 가지 형태라는 긍정적인 해석으로 결론을 짓기에는 이 같은 주장은 다소 무리라는 지적이 만만찮다. 북의 핵실험으로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논의를 할 처지가 정말 아니었다면, 당시 국민이 핵실험에 따른 북한의 직접 사과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투명한 절차를 통해 남북이 만났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안씨는 ‘결과적으로’ 정부당국에 신고조차 하지 않는 등 남북교류협력법을 위반하면서 북측 당국자와의 접촉을 강행한 꼴이 됐고, 이 때문에 ‘안희정-리호남’의 ‘비밀접촉’은 정상회담을 위한 ‘정치적 목적’에서 이뤄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한 상황이다. 다시 말해 정부가 비난 여론을 감수하고 ‘비선접촉’을 감행한 것은 참여정부의 낮은 지지율을 회복하고 나아가 정권 재창출을 위한 최고의 흥행카드로 볼 수 있는 정상회담이라는 감동의 드라마를 연출하기 위한 일종의 쇼였다는 분석이다.한나라당과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중심당 등은 “남북문제를 풀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내 정치를 풀기 위한 대선용 정치이벤트”라고 한 목소리로 맹비난을 퍼붓고 있고, 열린우리당 역시 안씨가 대북채널의 ‘비선조직’이라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해하며 아직까지 뚜렷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한나라당 “대선용 정치이벤트”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대북정책은 국민적 공감대와 투명성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북한 핵이 폐기되기도 전에 밀사를 보내서 남북정상회담을 구걸하는 그런 구태는 반복되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안희정씨는 아무런 직책도 없는 일개 민간인에 불과하다”며 “이런 분을 통해서 이런 국가의 중대사를 추진한다는 것은 이것은 가족정치, 동네정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나경원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노무현 정권이 과거 정권의 악습을 되풀이하면서 똑같이 밀행적 남북정상회담을 줄기차게 추진하는 것은 의도가 분명하다. 남북문제를 풀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내 정치를 풀기 위한 대선용 정치이벤트임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것이 야당의 억지논리라고 주장하려면 그동안 있었던 남북정상회담 추진 내역을 낱낱이 공개하고 지금부터라도 절차를 투명하게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통합신당모임의 양형일 대변인도 국회 브리핑을 통해 “청와대 이호철 상황실장과 안희정씨, 이화용 의원으로 연결되는 비선라인이 가동돼 정부 시스템을 배제한 것은 중대한 문제”라며 “대북 문제를 논의하는 데 있어 1970~80년대 식으로 비선을 가동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베이징에서 대북 인사를 접촉한 안희정씨의 자격은 무엇인지 밝혀야 한다”고 정부에 촉구했다.민노당 “정부의 소심함과 무능력” 질타민주노동당 황선 부대변인은 논평에서 “청와대가 안희정이라는 개인을 베이징에 보내는 방식으로 일처리를 한 것은 정권의 소심함과 무능력 때문”이라며 “그간 이 정부가 얼마나 대책없이 민족문제에 손을 놓고 있었는지 실감나게 하는 부분”이라고 꼬집었다.국민중심당 이규진 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청와대는 이호철 실장이 지금에 와서 남북비밀접촉 사실을 공개한 배경도 확실히 밝혀야 한다”며 “혹시라도 곧 성사될 남북정상회담의 사전 분위기조성 목적으로 비밀을 공개한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청와대는 이제라도 비밀접촉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내용과 비밀접촉 사실을 언론에 흘린 의도를 공식적으로 국민 앞에 밝혀라”고 촉구했다.열린우리당은 이날 오전 원내대책회의를 개최했으나,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이는 현 정부의 386 실세로 통하는 이화영 의원 의원이 열린우리당 소속임을 감안할 때 대북 비밀 접촉 경위를 묻는 정치권의 공세를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최재성 대변인은 이날 현안 관련 브리핑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여론의 흐름을 살피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이화영 “북한이 비공개 원하는데 어떻게…”이화영 의원은 이와 관련 이날 SBS라디오 ‘김신명숙의 전망대’에 출연해 “북측에서 비공개로 하길 원하는 것을 공개해 갈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또 정상회담 의혹과 관련해선 “북한이 핵실험을 한 시기에 정상회담을 정치적 목적으로 한다고 상상하는 사람들의 두뇌구조가 정상이라 생각하느냐”고 따진 뒤 “외교는 비밀이 많기 때문에 (비밀접촉을)비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리호남 참사는 누구?
리호남(54) 참사는 북한 최고대학인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인물로, 남북정상회담 이후에는 민경련(조선민족경제협력연합회) 참사 자격으로 서울에서 열린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의 수행원 자격으로 남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학창시절에는 뛰어난 학업능력과 리더십으로 한국대학의 학생회장격인 ‘학부 대대장’을 맡기도 했다.
안희정, 100만원 이하 과태료 물 듯
안씨가 남북교류협력법을 위반함에 따라 안씨의 위법사안 처리 여부도 관심이다. 현재 남북교류협력법 시행령에 따르면, 안씨의 경우 신고없이 북한 주민을 접촉한 행위로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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