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주력부대’로 꼽혔던 서울지하철노조가 제3의 노총으로 불리는 ‘국민노총’ 창설 주역으로 자리를 옮긴다. 서울지하철노조의 민주노총 탈퇴는 2007년 KT노조의 탈퇴만큼이나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995년 민주노총 창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후 민주노총의 각종 투쟁지침과 강령을 잘 따르던 ‘강성노조’의 대표주자가 바로 서울지하철노조였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지하철노조 조합원들은 40대 이상이 80%를 이루고 있다. 초창기 민주노총 창립에 적극적이었던 조합원들이 탈퇴에 손을 들어줬다는 뜻이다.
“2007년 총파업하고 사측에서 보복 당할 때 해준 게 하나도 없다” “몇 차례 파업 끝 복지 다 사라졌고 인원도 감축…울타리 못 돼줘”
민주노총 탈퇴가 확정된 현재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일단 서울지하철 조합원들은 “민주노총이 조합원들을 못 지켜준 게 가장 마음이 아프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1980년대 후반 입사해 노조활동을 해온 K씨는 “2007년 파업할 때 크게 당했다”며 “해고된 직원들 임금 주는데만 조합비가 160억원이 들어갔다”고 말했다. K씨는 “우리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싸운 게 아니라 민주노총 지침 때문에 싸운 건데 짤리고 돈 들어가고 누가 좋겠나”고 말한 뒤 “이용만 당하고 팽 당했다는 느낌이 강하다”고 털어놨다. 노조간부로 활동중인 B씨도 “민주노총이 우리를 못 지켜줬다”며 “조합원들 사이에서 민주노총에 대한 불만이 가장 컸다”고 말했다. B씨는 “2007년에 총파업하고 사측에서 보복 당했을때 민주노총이 해준 게 하나도 없다”며 “복지 좋던 회사가 몇차례 파업 끝에는 복지가 다 사라졌고 인원도 많이 감축됐다”고 회고했다. B씨는 “지켜줄 울타리가 되지 못한다는 게 (민주노총을 탈퇴한) 가장 큰 이유”라고 덧붙였다. 민주노총 복귀에 대한 의견은 신중했다. 다만 민주노총의 사과와 변화를 전제로 꼽았다. K씨는 “민주노총을 싫어하지만 버릴수는 없다”며 “민주노총 노선이 바뀌고 우리에게 사과한다면 돌아갈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다만 K 씨는 “다시 (민주노총으로)바뀌는데도 시간이 많이 들어갈 것”이라며 “지금은 민주노총을 편들었던 사람들이 몸을 사리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B씨도 “민주노총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고 애증의 관계로 볼 수 있다”며 “민주노총이 사과하고 잘하겠다고 했으면 이렇게 안 됐을수도 있다”고 털어놨다. B씨는 “복귀할 가능성은 낮을 것 같다”며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쉽게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1990년대 초반에 입사한 C 조합원은 “민주노총 탈퇴에 반대한 사람 잡는다고 살기등등하다”며 “복귀에 대해서는 한동안은 몸 사리고 있어야 할 것”이라고 현장분위기를 전했다.
노조의 두 가지 역할
노조의 역할은 조합원에 대한 복지문제와 사회적 책무로 나뉜다. 노조가 복지문제에 매몰되고 사회적 책무를 방기한다면 최근 정규직 세습을 단협에 명시하려고 했던 현대자동차노조와 같은 비난에 직면하게 된다. 반대로 사회적 책무에 매달려 조합원들의 권익에 소홀하다면 조합원들이 베겨내지 못한다. 양쪽의 평형추를 맞추는 것이 노조가 늘 고민해야할 문제다. 그동안 민주노총이 움직인 ‘정치투쟁’에는 늘 서울지하철노조가 선두에 섰다. 서울지하철노조는 1994년에는 임금 교섭이 결렬된 뒤 전국지하철노동조합협의회에 공권력이 투입되자 철도, 부산지하철노조와 공동 총파업을 진행했다. 이어 1996년에는 노동법 날치기 통과로 총파업, 1997년에는 노동법 개악에 대한 총파업이 있었다. 또 서울지하철노조는 1999년 구조조정에 맞서 공공기관으론 처음으로 8000명이 참여하는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그들은 명동성당과 서울대에서 화염병과 쇠파이프를 들고 격렬하게 시위하며 IMF 외환위기의 구조조정에 맞섰다. 이 파업은 8일 동안 진행됐으며 ‘시민의 발을 볼모잡았다’는 사회의 비난에 결국 파업을 접었다. 그리고 2004년에는 궤도연대 산하 5개 노조가 위원장과 24명 고소 및 직위해제를 걸고 총파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후폭풍은 서울지하철노조가 홀로 떠 안았다. 그게 문제였다. 잇따른 파업으로 해고자가 발생했으며 해고자에 대한 인건비가 최근 10년간 159억원에 달했다. “민주노총식 전투에 이긴적이 있느냐”는 볼 멘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서울지하철노조 조합원들의 정서에는 ‘민주노총이 우리를 못 지켜줬다’는 기류가 팽배했다. 총파업하고 정부와 사측에 의해 누군가는 해고당하고, 누군가는 보복 당하며, 복지혜택이 하나하나 사라지는 동안 민주노총이 해준 게 없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상황파악 못한 민노총
서울지하철노조 입장에서 민주노총은 더이상 ‘울타리’가 아니었다. 그리고 서운했다. 탈퇴를 묻는 총투표가 벌어지는 과정에서도 민주노총은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 못했다. 현 집행부를 ‘어용’으로 매도하는 ‘마타도어용’ 전단지만 35종이 넘게 뿌려졌다. 차라리 그동안 지켜주지 못했서 미안하다고 머리를 숙여야 했고 감싸 안아야했다. 결국 민주노총이 노조법 재개정, 최저임금 현실화 등 다른 정치투쟁을 준비하고 있을 때 서울지하철노조 조합원들은 마음은 떠났다. 서울지하철노조 관계자는 민주노총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애증'의 관계로 표현한다. 민주노총을 싫어하는것이 아니란다. 애증의 관계다. 민주노총 탈퇴를 묻는 총투표를 하면서도 그들은 못내 마음이 불편했다.
여전히 민주노총은 서울지하철노조의 탈퇴를 놓고 특정 정치세력이 개입된 민주노조 와해공작으로 보고 있다. 인터넷에서 쓰는 은어 중에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말이 있다. 차라리 민주노총은 '지못미'라고 외쳐라. 그래야 노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