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임금인상도 필요 없다”…“최소한의 근로기준법만 지켜라”
사측 영진전업 “노조 무서워 일 못해”…“우리가 피해자”
“그 동안 수차례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 이야기를 전해도 눈길 한번 주지 않던 언론들이 몸에 불을 붙이고 나니 이제서야 눈길을 주더라.”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건설노동조합 한 관계자의 말이다.
건설노조 산하 인천건설지부 전기분과 노조는 이랜드 노조와 같은 달인 지난 6월 파업에 돌입했으나 이랜드 노조가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던 것과 달리, 전기분과 노조 파업은 일부 언론에서만 단편적으로 다뤄졌다. 그렇게 파업을 지속해오던 지난 달 27일 건설노조 전기분과 한 조합원이 분신, 7시간여 만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전기분과 노조파업 현장은 파업돌입 130여 일만에 수면 위로 떠올랐다.
“동계점퍼도 신청해놨는데…”
한국전력공사 인천사업본부로부터 수주 받아 배전 업무를 하는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들로 구성돼 있는 인천건설지부 전기분과 노조가 파업을 강행한지 131일 째인 지난 달 27일. 조합원들은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인천지역 전기공사 사업체 대표인 영진전업(대표 유해성) 앞에서 집회를 벌였다. 사건은 여기서 터졌다. 애초에 130여명으로 시작했던 조합원의 대부분이 빠져나가고 남아있는 25명의 조합원 중 연장자에 속했던 정해진(48)씨의 분신 사망사건이 발생한 것. 현장에 있던 한 조합원은 “집회 중 경찰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정씨가 한 골목에서 신나 2통을 들고 나타나 몸에 뿌린 뒤 불을 붙였다”며 “몸에 불을 붙인 상태에서도 ‘전기원 파업 투쟁은 정당하다’ ‘유해성을 구속하라’를 외쳤다”고 전했다.정씨와 함께 파업에 동참했던 조합원들은 정씨를 항상 솔선수범하고 밝았던 사람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조합원은 “정씨는 평소 동생들을 잘 챙겨주고 밝은 성격이었지만 잘못된 것이 발견되면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호되게 혼내는 바른 사람이었다”며 “조합비에 보탤 10만원을 벌어왔다며 환하게 웃던 얼굴이 눈에 선하다. 노조동계점퍼도 신청해놨는데…”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정씨는 슬하에 자녀도 없고 부인과는 이혼해 노부 정모(72)씨와 단둘이 살았다. 한 조합원은 “정씨가 사건 당일 아침 노부와의 통화에서 ‘노조파업상태가 길어진다. 이 사태가 해결되기 위해선 전환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며 “부양할 가족이 적었던 것도 정씨가 분신을 감행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노조 “최소한의 근로기준법이라도…”
이들의 교섭은 지난 2월 28일을 시작으로 5월까지 총 10차례에 걸쳐 이뤄졌으나 합의점을 도출해내지 못했다. 이에 노조는 지난 6월 7일 지방노동위원회에 조정신청을 냈지만 13개 협력업체 중 2개 업체가 지노위의 조정안을 거부해 조정은 중지됐다. 결국 노조는 88%의 찬성률로 총파업을 결정하고 오랜 싸움을 시작하게 됐고 총파업 중에도 사측 대표인 유해성 대표와 몇 차례 면담을 진행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팽팽한 대립뿐이었다.20여 년 간 전봇대에 몸을 의지하며 배전현장의 최전선에서 일해 온 정씨가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노조측의 파업목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임금인상도 아닌 ▲주 44시간 노동 ▲토요 격주 휴무 보장 ▲고용보장 등의 단체교섭 체결뿐이었다.영진전업 “우리가 피해자다”
이와 관련 사측대표인 영진전업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현재 남아있는 노조 조합원 25명 중 영진전업 근로자는 한명도 없으며, 단지 사측대표이기 때문에 모든 총대를 매야하는 것이 억울하다는 것.영진전업 한 관계자는 “파업당시 영진전업의 전기 노동자 11명 중 2명이 노조에 가입했는데 그 중 1명은 복직했고, 다른 한명은 회사로 돌아오기 민망하다며 회사와 노조를 아예 떠났다”고 설명했다.이 관계자는 “전기노동자들이 파업을 한다고 해도 우리는 사무실 안에서 우리 업무를 봐야한다. 그런데 노조원들이 밤낮으로 돌, 참치캔 등을 던지고 낫을 들고 위협하는 통에 일을 할 수가 없다”며 “노조가 ‘사무실에 불을 지르겠다’고 선전포고한 이후로는 밤에도 돌아가며 불침번을 서고 있는 실정”이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영진전업 유해성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도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보도에 따르면 유 사장은 “고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그 동안 불법행위를 계속해왔던 노조에게 있다고 생각한다”며 “우리에게도 자유권이 있고 노조를 싫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책임을 회피했다. 이어 “영진전업에는 노조 조합원이 없고 나 역시 노조와 교섭할 의무가 없는 사람이라며 노조원들이 회사 정문을 막아서면서 회사일도 제대로 안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