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원직복직∙비정규직지회 인정∙외주화 중단”
원∙하청 모두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 책임회피
노동조합을 만들겠다던 그들의 선택이 잘못됐던 것일까. GM대우 비정규직지회의 투쟁은 노조를 설립함과 동시에 시작됐다. 지난해 9월 2일 설립된 GM대우 비정규직노조는 다음날인 3일부터 비정규직 직원들을 대상으로 ‘노조에 가입하라’는 홍보활동을 펼쳤다. 노조측 주장에 따르면 사측의 ‘노조와해작전’은 그 때부터였다. GM대우 및 하청업체 관리자들은 시설물보호라는 명목으로 노조의 선전활동을 방해했고, 노조와 사측 간에는 유혈 폭력사태까지 빚어졌다. 결국 노조 집행부 간부를 포함한 조합원 35명은 지난해 9월 이후 징계해고, 계약해지 등을 이유로 회사에서 쫓겨났다. 이후 이들은 자신들이 일하던 GM대우 부평공장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했고 같은해 12월말부터는 목숨을 건 ‘위험한’ 고공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눈발이 세차게 휘날리던 지난 22일, 부평구청 앞 CCTV관제탑 위에서는 여전히 고공농성이 진행중이었다. 하늘에서는 지상 30m 위 관제탑을 올려다보고 있기 힘들 정도로 많은 눈이 내렸으나 박현상 조직부장은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날은 고공농성 27일째.지상에 있는 조합원들의 손길도 분주하다. 매주 화∙목요일마다 고공농성장 밑에서 열리는 집중투쟁문화제 준비도 해야 하고, 끼니때마다 철탑 위 박 조직부장의 식사를 챙겨야하며, 타 투쟁사업장과 연대투쟁까지. 한 조합원은 공장에서 일할 때보다 더 바빠진 것 같다고 웃으며 말한다. 비록 겉은 웃고 있을지라도 그들의 속사정은 편안하게 웃을 만큼 여유롭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내린 눈이 물이 되어 천막 안쪽으로 ‘뚝뚝’ 떨어지는 광경은 그들의 어렵고 힘든 상황을 대변하는 듯 했다.지난해 9월 해고된 조합원 27명(조합원 중 8명은 해고통보 이후 조합탈퇴 및 투쟁의사가 없음을 밝히고 복직했다.)은 현행 고용보험법상 근속기간에 따라 3~5개월간 월급의 50%를 지급받을 수 있다. 그러나 투쟁이 3달 이상 지속되다보니 몇몇 조합원들은 이미 실업급여가 끊긴 상태다. 나머지 조합원들 역시 길게는 2달 안에 실업급여가 끊기게 된다.“‘5천9백억 흑자’는 노동착취로 얻은 소득”
그렇다면 이들은 무엇 때문에 노조를 설립하려 했을까. 길거리에 나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노조에 가입한 것을 후회하고 있지는 않을까. GM대우 이대우 비정규직지회장은 노조 설립 이유에 대해 “인간답게 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오기 때문이라도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지회장이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외쳤던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노조에 따르면 GM대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의 50% 정도에 해당하는 임금을 받고 일하고 있다. 또 정규직이 받는 상여금과 각종 수당 종류는 13~14개에 이르지만 비정규직은 3개정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일거리는 많은데 그에 반해 인력은 부족해 연∙월차조차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잔업과 특근으로 한달에 2번 정도 쉬는 것이 고작이라는 게 노조측 의견이다. 실제로 GM대우는 지난해 2006년 대비 25%의 판매신장률을 보였다. 수출실적은 30%나 성장했고, 2005년부터는 3년 연속 흑자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실적이 늘어나니 노동자가 쉴 틈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노조측 주장은 이와 다르다. 원천적으로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인력을 신규로 더 고용하면 일을 적게 하건, 많이 하건 기본적으로 지불해야하는 ‘기본급’이라는 기본임금이 발생한다. 그러나 기존에 근무하는 근로자들에게 일을 시키면 연장근로수당만을 지불하면 된다. 이미 지불되고 있는 기본급에 ‘+a’만이 추가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회사입장에서는 기존 직원들에게 추가 근로를 시키는 게 인력을 보강하는 것보다 이윤이 더 많이 남게 된다.이와 관련 이 지회장은 “지난해 얻은 ‘5천9백억 흑자’라는 수치는 임금절감을 통해 얻은 이익”이라며 “부족한 인력을 충원하지 않아 월차를 신청해도 통과되지 않는 것은 부지기수다. 각종 업체의 공장에서 과로사가 많이 발생하는 것이 다 이 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지회장은 이어 “그것보다 더 한 것은 공장 내에서 관리자들이 ‘작업지시불이행’이라는 명목으로 근로자에게 폭언을 다반사로 내뱉고, 심할 경우 폭력까지 휘두르고 있다는 것”이라면서 “‘여기 아니면 갈 데 없냐’라는 생각으로 퇴사를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막상 현실을 돌아보면 정작 갈 곳이 없어 참고 지내고 있는 게 GM대우 부평공장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삶”이라고 말했다.메아리 없는 투쟁, 벌써 3개월째
특이하게 GM대우 사내하청 입사 기준에는 학력하한선이 아닌 ‘학력상한선’이 존재한다. 저학력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전문대졸 이하의 계약직 직원을 뽑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고도 갈 곳이 없다’는 요즘 세태에 성과급, 보너스 빵빵한 ‘대기업 공장’은 당장 먹고 살기 막막한 고학력자에게도 솔깃하다.그러나 이것이 문제가 됐다. 공장에서 일을 하기 위해 대학을 졸업하고도 고졸로 학력을 위조∙취업했던 노조 간부 중 6명이 지난해 9월 11일부터 3일새 해고통보를 받은 것. ‘취업규칙위반’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대우 비정규직지회장 역시 4년제 대학교를 졸업했다. 이 지회장은 “대학교를 졸업했지만 마땅히 갈 직장도 없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어 당장 돈을 벌어야만 했다”면서 “공장 내 비정규직 중 대졸 학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여럿 있지만 사측은 조합원에 대해서만 뒷조사를 실시했고 그중 집행부 6명이 해고당했다. 이는 노조압박의 신호탄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