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문수호 기자] 기업이 지속 성장하기 위한 조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환경과 트렌드에 끊임없이 변화하고 적응하는 것이다.
어느 산업이든 변화가 없을 수는 없다. 변화하지 않는 기업은 결국 도태되기 마련이다. 최근 ‘100년 기업’ 기치를 걸고 이를 목표로 하는 기업이 늘고 있지만,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다.
산업계에서 보수적이면서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업종 중 하나로 철강산업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철강산업 역시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면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다. 중국 하나로만 전세계적인 철강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 만큼 공급과잉 산업이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해 창업 50주년을 맞으며 100년 기업으로 도약을 준비 중인 포스코는 세계적으로 독보적이고 차별화된 기술력과 경쟁력을 지닌 업체다. 포스코는 최근 자사 고부가가치 제품인 WP(World Premium)를 넘어 WTP(World Top Premium) 전략을 선보이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 2014~2015년 창사 이래 최대 고비를 맞았다. 2013년 이후 다소 꺾이기 시작한 영업이익은 2015년 창사 이래 첫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두 자릿수 영업이익률이 당연시됐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포스코도 영업 전선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당시 포스코는 체질 변화를 위해 많은 것을 바꿨다. 가격체계도 이때 바뀌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국내 철강 가격은 포스코의 가격 공표가 곧 기준이자 표준이었다. 그러나 포스코는 중국산 저가 수입재가 철강 시장을 교란하자 이를 과감히 포기했다. 40년 이상 유지해오던 리스트가격을 없앴다. 리스트가격은 국내 철강가격의 기준이자 법이었다.
포스코가 수요가에 따라 개별 협상으로 바꾸면서 철강업계 내 가격체계 자체가 바뀌게 됐다. 포스코의 가격 발표만 기다리던 업체들도 이제는 각 수요가들과 개별 협상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변화에 적극적인 포스코도 딱 하나 버리지 못하고 있는 아쉬운 점이 있다. 바로 ‘원료가격 반영’이다. 정확히는 원료가격 반영시점을 뜻한다.
포스코의 원료가격 반영시점은 3개월 뒤다. 원료가격에 변경이 생기면 3개월 뒤 제품에 반영된다는 뜻이다. 이는 수요가와의 가격협상에서 항상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최근 사례를 봐도 알 수 있다. 상반기 높은 수준을 유지했던 철광석 가격이 급락하면서 하반기 가격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 대표적으로 조선사와의 후판 가격협상을 꼽을 수 있다. 제품에 반영되는 원료가격은 높지만 현재 낮은 수준의 원료가격 때문에 수요가의 저항에 부딪힌다는 뜻이다.
반면 중국 철강업계는 원료가격을 제품가격에 바로 반영하고 있다. 원료가격에 변화가 생기면 제품가격에 즉시 반영되는 만큼 괴리가 없다. 시황에 따라 제품 가격인상폭이 다를 순 있지만, 원료가격에 변동에 따라 즉시 효력이 생기는 만큼 수요가의 저항은 크지 않은 편이다.
이에 반해 포스코는 가격협상 때마다 진통을 겪고 있다. 원료가격의 급락과 후방산업의 부진이 겹치면 가격협상이 더욱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철광석 등 원료도 재고를 쌓아두는 만큼 제품가격 반영과 시차가 생길 수 있지만, 이웃나라의 가격정책을 고려하면 바꾸지 못할 것도 아니다.
국내 시장의 철강 가격이 중국산 수입재에 따라 움직이는 해프닝이 벌어지는 것도 이 같은 가격결정 시스템이 작용한 영향이 크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정보공개의 시대다. 이제 철광석 등 원료가격 변동은 수요가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정보다. 누구도 더 이상 정보 비대칭에 따른 이익과 손해를 보지 않는다.
중국과 같이 원료가격을 제품가격에 바로 적용할 수 있다면, 원료가격과의 괴리가 줄어드는 만큼 가격협상에서 오는 진통도 경감할 수 있다.
중국산 수입재 가격이 내리면 수요가는 일단 방어 태세에 들어간다. 반대로 가격이 오르기 시작하면, 적극적으로 돌변한다. 가격협상을 주도하던 포스코가 이제는 항상 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실 현재의 가격체제는 후방산업과 수요가에게 매우 유리하다. 또 타 산업의 중견기업에게도 현 시스템이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포스코가 원료가격이 오르내릴때마다 가격을 변동하면 부품업계 등 협력업체들이 대기업에 가격을 반영하지 못해 큰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점에서 포스코는 국내 산업의 갑작스러운 변동을 막는 완충 역할을 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강업계 내에선 변화를 원하는 목소리가 크다. 포스코의 수요가에 대한 배려가 철강업계의 다른 기업에겐 다소 불이익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포스코는 공기업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철강업계의 리딩 컴퍼니라는 점도 사실이다. 후방 산업의 각 기업들이 포스코의 살신성인을 알고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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