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기고 | 이천수를 직접 본 것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쯤이었다. 압구정동의 디자이너 클럽 건물을 통째로 사용하던 캘리포니아 피트니스센터에서 한창 운동할 때였다. 아마도 이천수는 친구 트레이너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 일부러 방문한 것 같았다. 구름처럼 사람들이 몰려 들었지만 쑥스러워 다가가지 못했다. 여담으로, 3명 가족의 피트니스센터 평생 회원권을 구입했는데 폐업으로 인해 휴지조각이 되었다. 지금도 자다가 이불 차는 경우가 있고, 오렌지도 캘리포니아산을 먹지 않는다.
지난 5일, 이천수가 만취 운전자를 1km 따라가 잡았다는 뉴스가 나왔다. 이런 영웅적인 행동은 어떻게 나왔을까? 인터넷 뉴스의 댓글에는 칭찬이 대부분이지만 별 것 아니라는 시니컬한 반응도 존재한다. 이천수는 "그 상황에선 누구든 그렇게 행동했을 것"이라며 겸손하게 말했다. 과연 그럴까? 110년 전, 시간의 섬광으로 되돌아가 보자. 1912년 4월 14일, 대서양 위에는 타이타닉호가 우아하게 떠 있었다. 2,206명의 영혼들과 함께 한 밤, 어두운 물결 속으로 사라졌다. 그날, 가슴을 저미는 것은 생존자들의 고귀한 비율이었다. 여성들의 우아한 실루엣은 74%, 어린 천사들은 52%의 높은 생존률을 보였으며, 남성들은 20%에 불과했다. 선장과 승무원들의 용감한 영혼들은 배와 그들의 운명을 거룩하게 안았다. 타이타닉은 ‘여성과 어린이 먼저(Women and children first)’라는 고귀한 버켄헤드 호의 전통을 부드럽게 이어갔고,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단 8년 전에 우리 땅의 강물은 슬픔으로 물들었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가슴을 찢었다. 이는 안전에 대한 무디한 마음이 탄생시킨 비극이었으며, 생존자들의 비율은 가슴에 무거운 눈물을 흘리게 한다. 476명의 소중한 사람들 중 304명이 사라졌다. 생존자들 중 성인은 70%에 달했지만 어린이들은 겨우 23%에 불과했다. 선장이 가장 먼저 탈출하고 승무원들도 뒤따랐다는 사실은 가슴을 찢는 아픔이었다. 그렇다면 선진국과 후진국의 경계는 무엇인가? 그 기준은 단순한 경제력, 군사력, 정치력에 국한되지 않는다. 가장 아름다운 기준 중 하나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선진국에서는 사람들의 마음이 서로에게 따뜻한 정을 품고 있다. 눈이 마주치면 부드러운 미소로 인사하며, 문을 열고 공간을 내어주는 것은 사랑의 표현이다.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라는 말은 그들의 입가에 부드러운 노래처럼 맴돈다. 여성, 어린이,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신성한 헌신으로 여겨진다. 반면에 우리는 그렇지 않다. 엘리베이터를 6분 기다렸다고 화가 난 아파트 주민이 택배원의 짐수레를 발로 차며 욕설을 했다. 경제적 약자인 택배원은 생명줄과 같은 자신의 짐수레를 걷어찬 주민을 밀쳐내어 사망하게 한 사건도 있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공감이 너무 없어 벌어진 안타까운 현실이다.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