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문장원 기자 | 요즘 정치권에 '직을 걸겠다'는 말이 유행인 것 같다. 대부분 걸만한 직을 갖고 있는 여권 핵심 인사들이 각종 이슈와 관련해 야당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마치 영화에서 주인공이 마지막 한판에 가진 돈을 모두 거는 '올인' 장면을 연상케 한다. 장관이나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가 그렇게 쉬운 자리였나 하는 생각과 함께 상대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려는 과정 없이 배수의 진을 치는 소리여서 듣는 사람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지난 6일 고 백선엽 장군의 친일파 이력에 대한 비판에 대해 "이분은 친일파가 아니다. 제 직을 걸고 이야기할 자신이 있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부처의 장관이 논란의 인물을 이렇게까지 옹호하는 모습이 생경하면서도, 백 장군 본인이 생전 회고록에서 독립군을 토벌한 간도특설대에서 활동을 인정한 바 있는 사실을 직을 걸고 거부하는 이유가 이해되지 않는다. 박 장관이 역사학자로 나름의 연구의 결과를 내놓으면 또 모르겠다. 박 장관은 검사 출신이 아닌가. 박 장관만이 아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 변경 논란이 불거지자 "제가 김건희 여사 (일가의) 땅이 거기 있었다는 것을 이 사건이 불거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인지하는 게 있었다면, 장관직을 걸 뿐만 아니라 정치생명을 걸겠다. 이재명 대표, 민주당 간판 걸고 붙자"고 했고, 국민의힘 소속 장제원 국회 과방위원장은 민주당이 우주항공청특별법을 통과시켜 주는 대가로 과방위원장직을 사퇴하겠다고 사실상 거래를 제안했다. 단연 '직 배틀'의 고수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다. 한 장관은 지난해 10월 이른바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한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가 거기 있었다는 근거를 제시하라. 저는 직을 포함해 다 걸겠다. 의원님은 뭘 거시겠냐"고 몰아붙였다. 언뜻 영화 '타짜'의 마지막 판에서 주인공 고니의 명대사가 귀에 울리는 듯하다. 일반적으로 공직자가 직을 건다는 것은 업무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이해한다. 국민으로부터 받은 공직의 무거움을 알고, 책임감으로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고도 성과가 공언한 바에 미치지 못하면 국민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작금의 장관들은 야당이나 언론, 시민사회의 의혹 제기를 봉쇄하기 위한 카드로 '직을 걸고' 있다. 헌법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도박판의 패처럼 사용하는 공직자들, 참으로 경박스럽지 않나.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