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수요’ 선순환 이뤄야 지속가능소비 가능
안정적 수급‧합리적 가격‧R&D역량 등 우선돼야
매일일보 = 김민주 기자 | 지속가능한 가루쌀 소비가 식품업계 화두로 떠올랐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쌀 공급 과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분질미를 활용한 쌀 가공산업 활성화’를 추진해왔다. 떡류‧주류‧즉석식품류 등에 국한된 쌀 가공식품 범위를 넓히고, 수입에 의존하는 밀가루 수요 일부를 쌀로 대체한단 목적이다. 분질미는 농촌진흥청에서 개발한 쌀 종류로, ‘가루쌀’로 알려졌다. 정부는 2027년까지 분질미로 연간 밀가루 수요(약 200만t)의 10%인 20만t를 대체한단 방침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식품업계는 가루쌀 활용 신상품을 내놓는 등 정부의 가루쌀 사업에 동참하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국내 주요 식품업체들은 국내산 쌀 사용 확대를 위한 노력을 약속한 바 있는 만큼, 정부 요청에 대한 화답이 올해부터 본격화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해태제과는 가루쌀 ‘바로미2’로 만든 ‘오예스 위드미(with 米)’를 출시했다. 전량 수입 밀가루로 만들던 오예스에 국산 가루쌀을 섞어 만든 쌀 초코케이크다. 대량으로 생산하고 유통기한을 안전하게 지켜야하는 양산형 제품으로는 첫 시도로 25만 상자(갑)만 생산하는 한정판이다. 밀가루만 사용하던 원료에 쌀 원료를 넣으면 떡처럼 약간 거칠어지는 식감은 전분 등을 활용한 해태만의 특화된 쌀 가공기술로 해결했다.
SPC삼립은 가루쌀을 활용한 미각제빵소 가루쌀 베이커리 라인업을 구축했다. 가루쌀은 일반쌀 대비 부드럽고 촉촉하여 빨리 굳지 않고 발효속도가 빨라 베이커리, 떡 개발에 적합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루쌀 휘낭시에’, ‘가루쌀 식빵’등 2종 등이다. 올 초엔 가루쌀로 만든 ‘우리쌀 설 선물세트’를 판매했다.
하림은 가루쌀로 면을 뽑은 ‘쌀라면’을 선보였다. ‘맑은 닭육수’, ‘얼큰 닭육수’ 등 2종으로 구성됐다. 쌀의 식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해 오랜 연구를 통해 국산 쌀과 밀가루 함량을 최적의 비율로 맞췄다. 하림만의 제트노즐 공법을 적용한 건면 제품으로, 생면 식감을 살린 것이 특징이다.
신세계푸드는 서울대학교와 손잡고 ‘국산쌀 활용 기능성 대체유(가칭 바이오 라이스 밀크)’ 개발에 나섰다. 협약을 통해 신세계푸드는 서울대 그린바이오 과학기술원, 밥스누와 공동으로 가루쌀 등 국산쌀을 활용한 기능성 대체유의 개발과 생산, 판매, 홍보를 맡는다. 서울대 그린바이오 과학기술원은 기능성 대체유 개발을 위한 기능성 성분, 유용 균주 발굴, 탄소저감 효과와 품질관리에 관한 연구개발과 인력 양성을 지원한다.
전문가들은 가루쌀 활용의 실질적 시장 효과를 보기 위해선 안정적 수급 및 합리적 가격 형성, 소비자가 납득할 품질력 등이 우선돼야한다고 강조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및 코로나 여파 등으로 국제 밀 가격이 급등했지만, 밀가루 가격은 여전히 쌀가루보다 더 저렴하다. 1kg당 소비자가격은 수입산 밀가루 2000원대, 국산 밀가루 3000~4000원대, 쌀가루 4000~5000원대로 형성돼있다. 국내 대다수 식품기업들이 수입쌀, 수입밀에 의존하는 이유다.
기업들의 가루쌀 소비를 늘리기 위해선 소비력이 받침돼야 한다. 수요 없는 공급은 지속가능할 수 없단 설명이다. 관능적으로 소비자들이 납득할 수 있어야, 기존의 수입밀을 가루쌀이 지속적으로 대체할 수 있다.
이영은 원광식품산업연구원 초대 원장‧전 원광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애국심에 의한 소비는 한계가 있으므로, 소비자들의 자발적 선택에 의한 가루쌀의 소비 활성화가 이뤄져야한다”며 “정부 지원비용을 활용하기 위한 기업들의 일시적인 시도에 그친다면 무용지물이 될 것이기에 가공센터 확대, R&D 경쟁력 확보 등이 선행돼야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