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김승현 기자 | 학대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아동을 구제하기 위한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건 발생 시 아동보호기관과 장애인 전문기관간 업무 혼선으로 자기 보호 능력이 부족한 장애아동이 방치되는 모양새다.
지난 2023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장애인 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장애아동 학대 피해 건수는 지난 2020년 133건에서 2021년 166건, 2022년에 249건으로 늘었다. 전체 아동학대 건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4% 수준이나 인구 비율로 따지면 일반아동의 4.4배에 달한다.
같은 기간 전국 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접수된 장애아동 학대신고는 413건으로 이보다 더 많다. 이 중 249건이 학대사례로 판정됐으며 이는 직전년도 같은 기간(166건) 대비 50% 늘어난 수치다.
이러한 수치 차이가 발생한 이유는 장애아 학대사례를 이들이 따로 관리하기 때문이다. 각 신고절차가 연계되지 않자 피해 현황을 비롯한 정확한 수치 파악이 어렵고 적절한 보호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아동학대를 조사하고 조치하는 아동보호 전담공무원과 성인장애인 중심 업무를 수행하는 장애인 관련 기관 및 아동보호 전문기관이 혼재한 상황에서 정보교류나 협력을 위한 구체적인 매뉴얼이나 지침도 없다.
보건복지부 내 장애인학대와 아동학대 부서도 나뉜 상태다. 현재 장애인학대는 보건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가 담당하며 아동학대는 아동학대대응과가 맡고 있다.
박명숙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과 장애인 보호 체계에서 장애아동이 배제되는 사각지대가 만들어졌다”며 “장애아동 학대가 확인되면 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아이를 장애인 관련 기관으로 보내려 하지만, 이곳은 성인장애인 중심이어서 다시 아이를 아동보호기관으로 보내려고 하는 문제 등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재덕 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학대받더라도 확인되지 않은 장애아동이 몇인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란 불가능하다”며 “단순한 보호에 그치는 게 아니라 여러 기관이 협력해 각자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미국은 학대당한 장애아동에 대한 통합지원을 시행하고 있다. 주마다 차이는 있지만, 아동학대가 신고되면 수사기관은 장애인 전문가와 함께 나서 아동의 장애 유무와 의심 여부 등을 함께 살핀다. 정부는 장애아동 학대 등에 관한 장기적인 연구를 수행함과 동시에 예방교육을 수행한다.
엄선희 변호사는 “장애아동 학대 예방 및 대응을 위해 모든 아동 관련 부서의 협력이 필요한 때”라며 “우리도 장애인 보호기관과 아동보호전문기관, 정부(지자체) 사이 긴밀한 소통과 정보교류 등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장애아동 학대에 대응하기 위한 예산 확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박 교수는 “전국에 설치된 장애아동 학대 대응 기관이 부족하며 개별 종사자 수도 10명 이하”라며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다른 기관과 협력하기란 물리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예산 확충을 통해 원활한 협력체계 구축을 위한 여건을 형성한 뒤 관련 규정(매뉴얼)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