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김경탁 기자] 6·4지방선거 결과는 광역단체장에서의 새정치민주연합 신승, 기초단체장에서의 새누리당 압승, 교육감 선거에서 민주진보진영의 싹쓸이 그리고 모든 지역에서 진보정당 및 무소속의 몰락이라는 결과로 요약된다.
이번 결과에 대해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지만 ‘세월호 참사’라는 전대미문의 비극 아래 치러진 이번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둔 가장 큰 변수는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선거전략 부재와 야권의 허를 찌르는 ‘박근혜 마케팅’의 성공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우선 참패가 예상되던 새누리당이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선방하고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압승할 수 있었던 과정은 ‘박근혜의 승리’로 요약된다.
‘국민이 3년 반 임기를 남겨둔 현직 대통령에게 다시 기회를 주겠다는 의사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여야를 막론한 정치실종이 더욱 크게 눈에 들어온다.
일반적으로 과거 지방선거들은 집권세력이 ‘지역일꾼론’을 내세우고, 야권은 ‘정권심판론’을 내세우는 것이 상식적인 구도였다.
그러나 공격수 역할을 할 새정치민주연합은 당 지도부의 존재감이 거의 없어서 정부에 대한 공세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반대로 새누리당은 이번 선거에 박근혜정부에 대한 재신임 성격을 부여하면서 ‘대통령을 구해달라’고 읍소했다.
세월호 정국에서 드러난 정치실종 현실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이후 다수의 보수세력은 침묵의 늪에 빠져들었다.
정부여당의 입장을 충실하게 전달해온 언론 시스템에도 마비에 가까운 위기가 이어져서 KBS에서는 사장 사퇴와 공정보도를 요구하는 총파업이 벌어졌고, MBC는 메인뉴스 시청률이 종편채널인 JTBC에 뒤처지는 굴욕을 겪고 있다.
사정당국은 청해진해운 실소유주인 유병언 회장에 대한 전방위적 공세를 통해 사회적 비난의 화살을 이쪽으로 돌려보려 했지만 선거운동 기간이 끝날 때까지 유 회장 체포에 실패하면서 ‘무능한 공권력’이라는 이미지만 강화시켰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으로 지목된 ‘관피아’ 척결을 위해 지목된 총리후보자 안대희는 스스로 ‘법조마피아’의 일원이라는 사실이 문제시되면서 지명 5일 만에 낙마했다. 여권의 차기 대권주자로까지 거론되던 인물이 오히려 대형 악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민심의 분노가 규제완화를 주도해온 현 집권세력을 향하는 가운데 일부 보수진영 인사들이 상황 반전을 위해 했던 발언은 역풍만 낳았다. 그 와중에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선두에 서있던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는 자충수를 연발하면서 스스로 무너져내려갔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선거운동 초중반 ‘정권 심판론’에 대항하기 위해 ‘지역일꾼론’을 내세워봤지만 접전지역의 경쟁상대인 야당후보 대부분이 현역프리미엄을 가지고 있는 현 자치단체장이라는 점에서 큰 효과는 없었다. 어떤 전략을 써도 도무지 먹히지 않는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다시 꺼내든 박근혜 카드…‘극약 처방’
존립 위기에 빠진 새누리당이 꺼내든 카드는 ‘다시 박근혜’였다. ‘얼음공주’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눈물을 흘린 이후 꿈쩍 않던 선거 판도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카드’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인식한 새누리당은 초반 캐치프레이즈였던 ‘지역일꾼론’은 아예 묻어두고 ‘이번 선거에서 패배하면 박근혜 대통령에게 조기 레임덕이 올 수 있다’는 다소 자해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선거 홍보물은 물론 매체 광고에도 후보의 얼굴 대신 대통령의 눈물 사진이 등장했고, 주요 후보들은 물론 당내에서 얼굴이 조금이라도 알려진 사람들이 모두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달라며 ‘도와주세요’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 퍼포먼스에 나섰다.
광고업계의 천재 카피라이터로 잘 알려진 조동원 홍보기획본부장이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1인 피켓 시위 릴레이는 큰 반향을 낳았다.
SNS를 중심으로 한 온라인 뉴미디어에서는 새누리당의 1인 시위 퍼포먼스에 대해 비웃거나 반발하는 목소리가 압도적이었지만 올드미디어의 영향력을 넘어설 수 없었고, 참사의 비극 속에 침묵을 지키던 보수세력의 마음을 움직여 이들을 기어코 투표장으로 불러냈다.
與, ‘불임정당’화의 전조…
천신만고 끝에 승리했지만 새누리당의 미래에 서광이 비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당장 정홍원 총리 사의와 안대희 후보자 낙마에 따른 후임자 물색부터 쉽지 않은데다가 예고됐던 내각총사퇴에 준하는 개각을 위한 장관후보자를 구하는 것도 어렵다는 후문이 들리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선거에서 대통령 덕을 톡톡히 본 여당이 과연 향후 국정운영에 있어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겠느냐는 지점에 오면 문제는 심각하다.
이전부터 ‘대통령권력에 대한 종속성이 크다’는 비판을 받아온 여당은 이번 선거를 통해 그 종속성이 더 심해지면서 뼛속 깊이 박히게 되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우려된다.
쉽게 말해 앞으로 ‘박근혜 없는 선거’를 치를 능력이 과연 새누리당에게 생겨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말이다.
‘박근혜 없는 선거’를 치를 능력이 없음을 스스로 인식한 여당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대통령과 다른 목소리를 내기를 기대하는 것은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렇게 청와대에 대한 종속성이 심화된 상황은 당내 차기주자 성장을 위한 토양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차기 권력이 불확실하다는 것은 다시 대통령 레임덕을 앞당기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는 큰 문제이다.
이전까지 차기 주자 선두를 지키던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가 선거 과정을 거치면서 추락했다는 점과 함께 국무총리후보 지명으로 기대됐던 안대희 전 대법관이 검증을 못견디고 낙마한 것은 뼈아픈 대목이다.
안대희 전 후보자는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총리’로 인지도와 호감을 얻어서 대권주자로 올라서는 ‘이회창 모델’을 재현할 수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여당 내에 정몽준 후보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인물도 마땅치 않은 가운데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보수진영의 새로운 후보감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반 총장을 대선후보로 영입하는 것 자체가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새로운 총리 후보자로 물망에 오르고 있는 김문수 현 경기도지사나 이번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정치적 위상이 올라간 남경필 경기도지사 당선자와 원희룡 제주도지사 당선자 등이 또 다른 대안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이 중에서 남 당선자의 경우 선거운동 시작부터 끝까지 ‘박근혜 대통령을 지키겠다’고 했던 그가 ‘포스트 박근혜’로 올라서기 위한 자기만의 독자적인 정치영역을 창조해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남은 카드는 김 지사와 원 당선자 두 사람인데, 김 지사는 강성 운동권 출신이라는 점에서 과연 새누리당 전체의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고, 원 당선자의 경우 대권주자로서 존재감이 너무 미미하다는 것이 문제이다.
[下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