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발등의 불’...자본유출 가능성·수출 둔화도 숙제
[매일일보 배나은 기자]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가 양적완화 프로그램 종료를 선언하면서 국내 경제에 끼칠 영향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양적완화 종료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을 의미한다. 이 경우 그간 신흥국에 투자됐던 자본들이 대량 유출돼 국내 금융시장에 ‘쇼크’로 작용할 수 있다.
문제는 인상 시점이다.현재 연준 측은 상당 기간 초저금리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다. 그러나 지표가 연준이 현재 예상하는 고용 및 인플레이션 목표에 더 빨리 접근한다면 금리 인상 또한 현행 예측보다 빨라질 수도 있다.양적완화 종료에 따른 한국 경제 영향에 대해 그간 정부는 한국 경제가 양호한 국가 부채와 경상수지 흑자 등 상대적으로 견조한 펀더멘털을 갖추고 있는 만큼 미국이 조기에 금리를 올려도 급격한 자본 유출은 없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표출했다.그러나 이 같은 ‘희망’과는 달리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미 미국이 돈 풀기 정책을 종료하고 금리를 급격히 올릴 경우 한국이 아시아 5개국 중 가장 큰 충격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국제통화기금(IMF)의 ‘2015년 아시아·태평양 경제전망’ 자료에 따르면 미국이 금리를 조기 인상해 미국 성장률이 하락하고 시장금리가 급등할 경우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쇼크’ 발생 시점으로부터 1년 동안 0.98%포인트 떨어질 것으로 전망됐다.이 같은 하락폭은 일본(-0.86%포인트), 아세안 5개국(-0.85%포인트), 중국(-0.79%포인트), 인도(-0.15%포인트) 등 아시아 주요국 중 가장 크다.로메인 듀발 IMF 아시아·태평양 지역경제팀장은 “한국에 들어오는 자본은 외부충격에 민감하기 때문에 금융 부문에서 자본유출 가능성이 있고, 실물경제 부문은 대미 수출 둔화로 어려워질 수 있다”고 밝혔다.국가부채가 양호한 수준이라는 것 역시 사실과는 다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이한구 의원의 국정감사 질의자료에 따르면 2014∼2018년 국가재정운용계획 기준으로 박근혜 대통령 임기 중 국가부채는 216조3000억원 늘어난다. 지난 2012년 국가부채가 443조1000억원이었는데 박 대통령 임기 말인 오는 2017년에는 659조4000억원까지 증가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가부채 수준은 2012년 현재 국내총생산(GDP) 대비 32.2%로 일본(219.1%), 미국(106.3%), 영국(103.9%), 독일(89.2%) 등 선진국보다 낮지만 증가 속도가 가파르고,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앞지르는 점은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이미 1100조원 돌파를 목전 둔 가계부채에 따른 타격 역시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부채는 참여정부 마지막해인 2007년에 665조원이었던 것이 MB정권을 거치면서 폭증해 박근혜 정권 첫해인 지난해 1021조원을 기록하면서 ‘1000조원’을 돌파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경기부양을 근거로 꾸준히 ‘빚 권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는 상황인 만큼 현재의 증가세가 지속된다면 내년 초에는 가계부채가 11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고 있다.정부는 현재의 가계부채 문제가 금융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에서 금리가 인상될 경우 후폭풍이 상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이미 국내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올해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로 가계부채 문제를 꼽고 있다. 한국은행이 국내 77개 금융기관 경영전략 및 리스크 담당 부서장, 금융시장 참가자(펀드매니저 등) 74명과 해외 자산운용사 한국투자담당자 1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67%의 전문가들이 가계부채를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의 주요 리스크라고 지적했다.대법원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2014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개인회생 신청자도 10만명을 넘어섰다. 파산을 신청하는 법인 수도 4년 만에 2배 이상 늘었다.이번 양적 완화로 인한 자본유출로 신흥국들의 실물경제가 위축될 경우 한국에 타격이 올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 한국의 전체 수출 중 신흥국 비중은 중국과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10개국만 쳐도 40%를 넘고 남미 등 기준을 넓히면 70% 수준에 달한다.오정근 건국대학교 특임교수는 미국의 QE 종료에도 일본과 유럽이 완화적인 정책을 펴면서 달러화 강세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점을 거론하면서 “원·엔 환율의 추가 하락으로 한국 수출이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반면 일각에서는 이번 양적완화 종료가 그동안 테이퍼링 프로그램에 따라 단계적으로 이뤄진 데다 충분히 예견된 조치인 만큼 시장에 주는 충격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미국이 자국의 경기뿐 아니라 서로 유기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세계 경기의 흐름을 면밀히 관찰해 행동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KDI의 조동철 부장은 “금리 인상 시점을 정확히 짚을 수는 없지만, 미국이 예상보다 금리를 일찍 올린다면 미국 경제 회복이 빠르다는 신호로도 받아들일 수 있어 한국에 긍정적인 쪽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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